2015년 5월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은 냉정하고 차갑기만 하다. 국회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미지는 솔직히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정쟁(政爭)에만 골몰하는 직업정치인들의 집합소 정도가 아닐까?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가 조성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국회 자체가 비효율적 정쟁을 계속해 온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밖에도 그것을 빌미로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 온 여러 언론의 프레임이나 이에 편승해 온 일부 지식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도 분명히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정치학자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이론적 관점 자체가 매우 협소하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국회를 바라보는 이론적 관점은 대학 강의나 각종 수험 교재로 활용되는 헌법교과서들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들을 살펴보면, 국회에 대한 설명은 예외 없이 "직접민주주의 vs 대의민주주의"의 구도를 전제로 후자를 실현하는 대의기구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국회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최선의 방안을 실현하기 어려운 현실적 조건 때문에 대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선택된 대안이라는 것이다. 이는 국회가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일종의 차선책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거의 모든 헌법교과서에서 무비판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이러한 설명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기저를 이루는 '정치적 대의'(政治的 代議, political representation)의 논리를 담아내기에 대단히 부족하다. 자유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독특한 정치적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적 대의의 논리이다.

정치적 대의에서 선거, 즉 투표를 통하여 유권자들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은 필수적이지만, 그것만으로 정치적 대의가 완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치적 대의의 논리는 오히려 그처럼 선출된 유권자들의 대표가 의회에 모여 의사절차를 통해 합리적으로 토의하는 과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왜냐하면 바로 그와 같은 토의과정을 통하여 대표들을 선출한 유권자 집단 전체, 나아가서는 국민 전체가 마치 의회 안에 현현(顯現)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정치적 대의는 선거를 통한 단순한 대표 정하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대표들 사이의 합리적 토의를 통하여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가 '다시(re) 현재화(presentation)'하는 것을 의미한다.

방금 이야기한 정치적 대의의 논리는 사실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론가들에게 상식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현실 정치에서는 물론이려니와 교과서적인 헌법이론에서조차 그러한 상식은 통용되지 않고 있다. 헌법교과서나 일반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정치개혁의 입장에서 진행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나 국회의사절차의 개혁논의조차도 앞서 거론했듯이 국회를 바라보는 매우 협소한 이론적 관점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선거구제 등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역시 마찬가지의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도대체 왜 이처럼 협소한 관점이 한국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일까?

단언컨대, 이와 같은 현상의 배후에는 국회의 구성에 관련된 대한민국 헌정사의 독특한 경험이 작동하고 있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선거로 구성된 헌법제정회의 이후 헌정사의 전 기간에 걸쳐 거의 일관되게 단원제 국회 체제를 유지해 왔다. 1952년의 제1차 개정 헌법에 의하여 양원제 국회가 도입되었지만 선거법 등의 미비로 실제 구성되지는 않았고, 군사정권 기간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비롯한 사이비 의회가 조직되었을 따름이다. 민주적으로 구성된 국회만을 대상으로 삼자면, 1960년 헌법 제3차 개정 헌법 하에서 짧은 기간 민의원/참의원의 양원제 의회가 존립했던 것이 유일한 예외이다. 하지만, 그 역시 구성 방식에 비추어보면 본격적인 양원제로 간주하기에는 모자란 측면이 존재한다.

이처럼 단원제 국회 체제가 정치적 상수가 된 상황에서, 정치적 대의의 논리가 단지 그때그때의 표심을 국회의석 수에 산술적으로 반영시키는 차원이나 국회의사절차를 간소화하여 의사결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 정도로 협소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는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국회 안에 다시(re) 현재화(presentation)하려는 관점에서 대표의 선출과정 자체를 복수의 채널로 디자인하고, 이를 기초로 국회를 복수의 회의체로 구성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상상력은 아예 발휘될 여지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양원제 국회 체제는 단 하나의 회의체를 통하여 일반 국민들의 다종다양한 정치적 의사가 언제나 대의될 수 있다는 '위험한 이상주의'를 점잖게 거부하는 곳에서 출발한다. 그 대신 양원제 국회 체제는 오히려 '안전한 현실주의'를 출발점으로 삼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회의체를 구성한 뒤, 이들 각각,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통하여 정치적 대의가 제도화될 수 있도록 기획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대안은 국민들의 단기적이고 개별적인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하원(민회)과 국민들의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정치적 의사를 대변하는 상원(원로원)을 양 축으로 삼아 국회 자체를 두 개의 서로 다른 회의체로 구성하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양원제 국회 체제를 취하고 있다. 제도의 세세한 측면들은 각 나라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에 따라 상이하지만, 이들 국가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적 통찰은, 앞서 언급했듯이, 단 하나의 회의체를 통하여 일반 국민들의 다종다양한 정치적 의사가 언제나 대의될 수 있다는 '위험한 이상주의'를 회피하려는 것이다.

냉전의 틈바구니에 분단과 전쟁의 참화를 딛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추진해야만 했던 대한민국의 헌정사에서 단원제 국회 체제는 일정한 수준의 현실적합성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국제화를 차례로 거치면서 다원성과 복잡성과 전문성이 높아진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그와 같은 현실적합성이 유지될 수 있는지는 심히 의문이다. 오히려 단 하나의 회의체를 통하여 국민 전체를 대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위험한 이상주의'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시대착오에 해당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의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정치적 의사를 검토할 때, 첫 손에 꼽아야 할 것은 각 지역을 단위로 한 정치적 의사이다. 그러나 단원제 국회 체제를 전체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 국회법, 공직선거법 등은 이를 대의하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는 단원제 국회 체제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 그와 같은 의사가 정당구조를 왜곡시키는 지역감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이에 관한 두드러지는 예로서 현재의 국회법이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지방 관계나 지방자치 및 지방분권 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상임위원회를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로 인해 이들 문제에 관련된 법률안은 제대로 심사조차 되지 않고 임기만료로 폐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관점에서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을 유발하는 법률안이나 지방자치단체 협의체 및 연합체가 국회에 제출한 의견에 관하여 이를 전담하는 상설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직접 청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주장에는 청종할 바가 적지 않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현행 헌법의 단원제 국회 체제를 전제로 임시적인 해결책을 구상한 것에 불과하다. 정치적 대의의 논리의 본질에 입각한 대한민국 국회의 혁신을 위해서는, 각 지역을 실질적인 정치적 단위로 분권화 시키는 동시에 그러한 정치적 의사를 별도의 회의체로 대의하는 것을 포함하여 양원제 국회 체제를 향한 헌법 개정이 시도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다원화, 복잡화, 전문화는 인구비례형 제1원에 지역대표형 제2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양원제 국회 체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