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남수북조 공정의 유래
○ 1952년 10월 모택동이 전신 황하수리위원회 주임 왕화윈(王化云)으로부터 강물을 끌어
들이는 구상에 대한 보고를 받은 후 “남에는 물이 많고, 북에는 물이 적다, 가능하다면
물을 가져오면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남수북조공정의 막이 열렸다.
○ 1958년 3월 성도에서 개최된 당중앙소집 회의에서 모택동이 장강, 漢濟黃과 黃濟衛를
끌어들이는 문제를 다시 제기하였다. 같은 해 8월 북대하에서 개최된 중공중앙 정치국
확대회의에서《수리업무관련지시》를 통과시키고 발표하였다. 여기서 “각 지역에서
진행하는 계획 외에 전국 범위의 비교적 장기적인 수리계획으로 먼저, 남수(주로 장강
수계를 가리킴)북조를 주요 목적지로 하는, 長江, 淮, 河, 漢, 海 각 유역을 연계하는
통일적인 수리 계통 계획을 곧 세 운다”를 분명히 밝혔다. 이는 “남수북조”라고 하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중앙의 정식 문헌이다.
* 자세한 내용 첨부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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