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공간
코로나19 사태를 지켜 본
국제부 기자의 단상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변하고 심지어 일이 그대로 멈춘 사람들도 있다. 베이징 특파원으로 선별 돼 중국으로 떠나기로 했던 류지영 기자는 사상 최악이라고 일컬어지는 코로나19라는 유행병 탓에 여전히 한국에 머물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기자의 시선에서 본 코로나19는 어떠한지 알아보자.
서울신문 기자 류지영
무심코 듣고 넘긴 ‘중국 폐렴 환자 발생’ 뉴스
2017년 1월부터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를 출입하면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와 연을 맺게 됐다. 이듬해 행안부 기자단 간사를 맡아 경상북도 방문 행사 등을 함께 진행하며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가치를 제공하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지난해 9월 회사에서 베이징 특파원으로 선발돼 국제부로 자리를 옮긴 뒤 부임 준비에 들어갔다. 언론사에서 특파원에 내정되면 국제부에서 일하며 해당국 언어와 문화 등을 익힐 수 있도록 3~4개월 정도 시간을 준다. 아무리 늦어도 6개월 안에는 중국으로 떠날 것으로 보고 한국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12월 말이었다. 아이를 베이징 현지 초등학교에 보내려고 입학 절차 등을 알아보고 저녁 늦게 퇴근했다. 아내가 중국으로 보낼 이삿짐을 챙기다 말고 호들갑을 떨었다. 후베이성 우한이라는 곳에서 폐렴 환자가 속출했는데,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재발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돈다는 뉴스가 나왔다며 “무서워서 중국으로 못 가겠다”는 것이었다. 국제부에서 중국 뉴스를 담당하는 나조차도 모르던 단신 기사였다. 검색해 보니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가 현지의 화난 수산물도매시장이라는 곳에서 폐렴 환자 27명을 발견해 치료에 나섰고 베이징에서 전문가들이 찾아와 조사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괴질이 세계를 위협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기자 역시 ‘세상에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나 나올 내용으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은 ‘이미 성숙한 예방 체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2003년 사스 사태를 겪으며 국가보건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 덕분에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유행도 무사히 넘겼다. 중국 공산당의 추진력과 일사분란함을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벽한 ‘오판’이었다.
새해 들어서면서 우한폐렴 뉴스가 서서히 커졌다. 중국에서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국제면 박스기사 정도였던 ‘우한폐렴’ 관련 뉴스가 프론트 페이지(전면)로 옮겨 갔다. 중국 담당기자인 내 일도 늘어났다. 국제부 기자로서 과거 전염병 발병 사례를 분석했다. 사스 때는 37개국에서 800명 정도가 사망했다. 메르스 때는 이보다 사망자가 적었다. 그때만 해도 이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던 때라 우한폐렴도 이 정도 수준의 전염병으로 봤다. 중국이 내놓은 자료에 근거해 “후베이성 이외 지역에서는 사망자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까지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춘제(설) 연휴를 맞아 중국 정부가 우한 지역에 사상초유의 전면 봉쇄령을 내리면서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국내외 주가도 폭락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한 폐렴에 걸리면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으려고 하는데 의료보험을 다시 살릴 방법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중국 당국에 대한 불신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중국은 지금 병원마다 환자들로 넘쳐나서 우한폐렴에 걸려도 입원할 수가 없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나 우리나라 문재인 대통령 모두 이 병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조만간 한국에서도 대유행이 한 번 올 거야. 이 병의 전염력이 정말 어마 무시해.”
초기 대처 미흡했던 중국, 코로나 우습게 보다 큰코다친 미국·유럽
2월부터 우한폐렴 기사가 신문 1면의 톱기사로 올라섰다. 중국에서만 하루 수백명씩 감염자가 쏟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이렇게 빠르게 퍼지는 병원체는 본 적이 없다”고 개탄했다. 코로나19(COVID19)라는 공식 명칭도 얻었고 천연두와 결핵,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신종플루(H1N1)처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의 반열에도 올라섰다. 중국에 사는 지인의 경고대로 우리나라에서도 ‘신천지’를 통해 대유행이 시작됐다.
코로나19 사태를 은폐하려다가 일을 키운 중국의 태도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중국발 입국금지 조치 외에 특별한 준비 없이 수수방관하던 미국과 유럽연합(EU)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코로나가 확산하는 와중에도 축구장과 농구장마다 관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외신 사진에 기가 찼다. 일부 젊은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려 보겠다’며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이른바 ‘코로나 파티’까지 열었다. 코로나를 독감 정도의 병으로 보고 너무 우습게 여긴 것이다. 특히 서양인들은 마스크 착용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유를 대며 병적으로 거부했다. 손이나 천으로 얼굴을 가리는 걸 극도로 꺼리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었다. 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감염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며 끝까지 버티다가 화를 키웠다. 지금 미국과 유럽의 혼란은 자신들의 오만함으로 자초한 측면이 있었다.
전 세계 코로나19 감염자가 300만명에 달했다. 전 세계 국가들이 한 번도 겪지 못한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테스트 받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은 국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차분히 대처하던 일본에서도 이번 사태로 사재기가 만연해 충격을 줬다. 유럽 지역에서는 ‘화장지 싹쓸이’ 현상이 생겨나 논란이 됐다. 왜 그토록 화장지가 필요했는지 구매자들도 알지 못했다. 그냥 다른 이들이 사들이니까 따라 샀다고 한다. 호주의 한 언론사는 ‘화장지 대신 쓰라’며 자신의 신문에 수십장의 백지 지면을 끼워서 배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하자 신문 부고 면이 모자라 지면을 늘렸다. 남미에서는 관이 모자라 골판지로 상자를 만들어 시신을 담고 있다. 전 세계가 ‘모범답안 없는 문제’를 풀고 있다.
‘실체 모르는 위기에는 과잉 대응하는 것 낫다’ 교훈
이번 사태를 겪으며 국제부 기자로서 몇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를 이끌 역량이 부족했다. 특히 이 병의 위험을 알리고 당국의 조사를 촉구한 우한의 의사 리원량은 되레 경찰에게 잡혀가 처벌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수준으로 보이는 중국 내 언론 자유도가 더 높아져야 진정한 대국이 될 수 있다.
선진국으로만 알았던 미국과 유럽의 민낯도 봤다. 20만명 가량 환자가 발생한 이탈리아에 산소호흡기가 2천개 정도밖에 없었다는 기사를 보고 혀를 찼다. 코로나19 감염자의 동선을 공개하는 우리나라의 방역체계를 비난하며 ‘개인의 자유를 버린 나라’라고 비난하던 프랑스에서도 사망자가 2만명을 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별다른 위협 없이 평화 시대를 구가해 온 나라들의 위기대응 능력은 기대 이하였다.
실체나 본질을 정확히 모르는 위기에는 과잉 대응하는 것이 낫다는 교훈도 얻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코로나를 방역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와 대만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아직까지 백신이나 치료약이 없는 상황에서 비타민C가 꽤 훌륭한 치료보조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기자는 코로나 사태로 특파원 비자 발급이 늦어져 한국에 발이 묶였다. 덕분에 시도지사협의회와 연락이 닿아 이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사태가 마무리돼 비타민C를 잔뜩 챙겨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