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개헌의 필요성
제20대 국회에 들어와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설치되고, 각종 공청회를 비롯하여 여러 시민단체의 의견을 듣는 등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다수의 개헌특위 위원들은 각종 인터뷰와 토론회 등에서 지방분권을 강조하고 있고, 이번 개헌에서 연방제 형태에 준하는 정도까지 분권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분권의 가치와 정당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답은 바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지방자치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헌법상 보장하고 있는 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지방자치제도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면 지방분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헌법재판소는「지방자치제도는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제고하고 지방의 균형 있는 발전과 아울러 국가의 민주적 발전을 도모하는 제도로서, 지방자치는 국민자치를 지방적 범위 내에서 실현하는 것이므로 지방시정에 직접적인 관심과 이해관계가 있는 지방주민으로 하여금 스스로 다스리게 한다면, 자연히 민주주의가 육성ㆍ발전될 수 있다는 소위 '풀뿌리 민주주의'를 그 이념적 배경」으로 하고 있고(헌재 91헌마21), 「민주정치의 요체이며 현대의 다원적 복합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적 다원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ㆍ협조로 지역 내의 행정관리ㆍ주민복지ㆍ재산관리ㆍ산업진흥ㆍ지역개발ㆍ문화진흥ㆍ지역민방위 등 그 지방의 공동관심사를 자율적으로 처결해 나간다면, 국가의 과제도 그만큼 감축되는 것이고, 주민의 자치역량도 아울러 배양되어 국민주권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념구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헌재 91헌마21, 99헌마28).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가 중심주의적ㆍ단일 거점 방식으로는 다면화ㆍ세분화되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오히려 다변화, 거점 다양화를 통해 각 거점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것이 국가경쟁력의 강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지방자치는 현대사회에 있어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에서 분권적 국가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며, 국제적 환경변화에 능동적이고 유연한 대응체제를 필요로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운영 시스템과 같이 수직적인 권력구조와 중앙집권적 정부형태로서는 유연성 부족으로 인해 환경변화에 대한 대처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이 계속하락(IMD 순위는 2011년 22위에서 2016년 29위로, WEF 순위도 2007년 11위에서 26위로)하고 있는 추세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연방국가인 독일, 스위스 등을 비롯하여, 단일국가인 프랑스와 스페인 등 선진 각국은 지방정부의 정책참여를 기반으로 분권화를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한편 통일 한국의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도 지방분권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남한과 북한이 70년이 넘게 매우 이질적인 정치체제 하에서 기본적인 생활문제의 해결방식을 달리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하나의 획일적인 정치 질서로는 통일의 충격을 흡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지방자치의 영역에서도 현재의 지방자치 시스템으로는 북한사회와의 동질성 회복 및 통합은 매우 곤란하다. 전체로서 국가의 동질성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문제에 관한 정책결정권과 정치적 결과에 대한 위험을 분담하는 국가구조를 도입하고, 지역마다 지역 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는 열린 지방정치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통일을 위한 안정적인 대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행 헌법의 문제점
현행 헌법은 제117조와 제118조에서 지방자치의 제도를 보장하고 있으며, 제도적 보장의 본질은 자치단체의 보장, 자치 기능의 보장, 그리고 자치사무의 보장이다(2005헌라3, 2006헌라6). 지방자치에 대한 헌법상의 보장을 제도보장으로 이해하면, 헌법에 의하여 일정한 제도가 보장되면 입법자는 그 제도를 설정하고 유지할 입법 의무를 지게 될 뿐만 아니라 헌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법률로써 이를 폐지할 수 없고, 비록 내용을 제한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95헌바48). 따라서 이러한 정신에 비추어 보아, 제도보장이라고 해서 단순히 제도의 전적인 형성권을 입법자에게 위임한 것으로 단순화하여 볼 것이 아니고, 해당 제도를 헌법에서 보장하면서 입법자에게 구체적인 형성권을 부여한 헌
법 제ㆍ개정권자의 의지를 입법자가 제대로 반영하였는지에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런데 헌법은 실질적 지방자치의 요소, 즉 '자치사무의 존재', '주민의사에 기한 자치기구의 구성', '자기 책임성', '독립성', '지방재정 보장' 등이 헌법의 명문을 통해 명확히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률에 의해 이러한 요소들이 침해 당하여도 위헌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사무배분과 관련하여 헌법 제117조는 '주민의 복리에 대한' 사무를 지방자치단체의 수행권한에 맡기고 있지만, 주민의 복리에 관한 대다수의 사무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인지, 국가의 사무인지 여부가 법률 규정에 의해 결정된다. 「지방자치법」 제9조 제2항에 의하면 지방자치법보다 타 개별법이 우선하므로 사실상 국가의 개별 법령에 의해서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범위가 축소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방에서 자율적 판단에 의해 자치사무로 수행해 오던 사무들을 중앙부처에서 법적 근거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법률로 제정하여 국가 사무로 전환하고 중앙부처가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도록 하면서 지방에서는 단순 집행적 사무만 담당하게 하여 지방분권에 역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들은 모두 우리 헌법이 지방자치에 관한지침과 한계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을 만큼의 내용을 규정하지 않고 전적으로 법률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헌법이 지방자치제도의 형성을 법률에 부여하고 있으므로, 입법권을 가진 국회에서 충분히 이해당사자인 지방의 이익을 고려하여 입법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단원제 국회의 성격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는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어, 국회의원이 법리상 국민의 대표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지역대표성도 겸하고 있다」(95헌마224 등)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입법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지방의 의견보다는 정당의 정책방향과 중앙부처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 경향이 강한 것이사실이다.
현재 국회 입법과정에서 지방의 의견을 전달하는 방안은 일반적 입법예고제에 따라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거나, 국회법상의 공청회 등을 통하거나 국회가 필요에 의해 관련기관의 의견제출을 요청하는 경우에 가능한 소극적 방식이 전부이다. 「지방자치법」 제165조 제6항에서 지방자치단체협의체는 지방자치와 관련된 법률의 제ㆍ개정 폐지가 필요한 경우, 국회에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으나 국회에 의견을 제출할 경우 국회에서 제출받은 의견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관해서는 규정이 없다.
또한, 모든 정책결정은 중앙집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법률구조적으로도 뒷받침되고 있는 현상이다. 즉 헌법 제9장의 경제에 관한 장은 국민경제, 자원개발, 산업의 보호ㆍ육성 등 모든 경제 분야 규제와 운영 주체를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의 '국가'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하는 것으로 볼것인가 아니면 지방자치단체에 대립되는 중앙정부만을 의미한다고 볼 것인가의 해석에 따른 입장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는 법률에 의한 위임이 없이는 이른바 '규제' 정책을 실시할 수 없다.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만 주민의 권리제한이나 의무부과 혹은 벌칙 등을 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종합하면 중앙정부에 정책의 결정권이 전속되어 있고, 지방은 독자적정책 결정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국회와 중앙정부가 정하는정책의 집행적 기능만 담당하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 개헌의 방향
새로운 헌법에서는 지방자치의 가치와 제도보장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규정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선, 수직적ㆍ기능적 권력분립 원리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날의 권력분립은 전통적 수평적 권력분립에서 나아가 수직적, 기능적 권력분립을 이루는 것이 중요해졌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은 입법ㆍ사법ㆍ행정권 상호 간뿐 아니라 각 권한의 내부적 관계에서도 철저히 이루어져야한다.
현대사회에서 고전적 의미의 3권분립은 그 의미가 약화되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여러 권한과 기능들의 실질적인 분산과 상호 간의 조화를 도모하는 이른바 기능적 권력분립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지방자치제도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 권력을 기능적으로 나누어 가짐으로써 오늘날 민주주의 헌법이 통치기구의 구성원리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권력분립의 실현에도 기여한다(헌재 2004헌바98). 중앙정부의 권력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권력의 수직적 분배는 서로 조화가 요청되고 그 조화과정에서 지방자치의 핵심영역은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이와 같은 권력분립적ㆍ지방분권적인 기능을 통하여 지역주민의 기본권 보장에도 이바지하는 것이다(헌재 2013헌바122).
이러한 의미에서 지방분권은 행정권 내부에서의 수직적 권력분립에 한정하여 볼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 전반에 걸친 수직적 권력분립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국가기능의 원활한 수행은 물론 주민, 나아가 국민 전체를 위한 복리 증진과 권리보호를 위하여 정책의 결정과 집행의 전 과정에서 상호 기능적ㆍ유기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수직적ㆍ기능적 권력분립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권력구조가 재편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지방자치의 현대적 의의와 기능을 충분히 보장할수 있어야 한다.
지방자치는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민주주의의 실험ㆍ실현의 장이라는 점이 강조되었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 감시자의 역할을 겸할 수 있다. 또한, 지방은 한정된 자원을 자신의 책임 하에 자율적으로 운용ㆍ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제도적으로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이며, 지방 상호 간의 생산적ㆍ창의적 경쟁이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방분권은 제공되는 공공재의 종류와 정도가 지역주민의 취향에 더 잘 부합하는 방향으로 정해질 수 있도록 하여, 지방분권적 국가운영체제 하에서 자율성을 확보한 지방정부는 보다 강한 예산제약조건 하에서 효율적 자원배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되는 등 효율성 측면에서도 강점을 갖고 있다. 또한, 행정책임을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전하여 중앙정부에 가해지는 정치적 압력을 감소시킬수 있고, 행정분야에도 시장규율과 경쟁질서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고, 다양성과 자율성에 기초하여 정책실험의 장, 정책학습의 장을 제공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동시적 행정능력 고양이 가능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는 보충성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지방자치법」 제10조 제3항은 '시ㆍ도와 시ㆍ군 및 자치구는 사무를 처리할 때 서로 경합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하며, 사무가 서로 경합하면 시ㆍ군 및 자치구에서 먼저 처리한다.'고 규정하여 보충성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은 중앙정부의 의사결정에 의해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기능과 역할이 좌우되어 왔다. 이것은 이른바, '보충성의 원칙'을 무시한 결과라고 할 것이다.
'보충성의 원칙'이란 개인과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해결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당사자가 우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는 원리로서 지방자치제에서 사회의 기능이 개개 사회구성원의 기능에 비하면 '보충적'인 것처럼, 국가의 기능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에 비하면'보충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국가의 기능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을 뒷받침해 주는데 그쳐야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을 무시하고 그것을 자신의 기능으로 흡수해서는 아니 된다는 원리로 설명된다.
이것은 사회전체와 개별 사회구성원이 기능적으로 상호 보완관계에 있는 것처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능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민자치에 의한 시민자유ㆍ시민복지의 보장은 우선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과제이고, 이를 근거로 하여 광역지방자치단체, 나아가 국가단위에서의 처리가 적당한 문제영역은 국가에서 처리한다고 하는 연관선상에서, 시민→기초지방자치단체→광역지방자치단체→국가라고 하는 상승형의 발상을 취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 본연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보충성의 원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떠한 권능과 의무를 가져야 하는가를 밝혀주는 기능배분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하여야 할 사무의 범위를 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헌법상의 한계로 기능한다. 따라서 헌법에서 보충성의 원칙을 명시하고 이를 존중하는 제도의 구현이 필요하다.
네 번째로는 입법ㆍ사법ㆍ행정ㆍ재정의 총체적 분권화를 이루어야 한다.
국가의 정체성을 지방분권으로의 지향점에 둔다면 입법, 사법, 행정, 재정의 모든 분야에서 지방분권을 지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먼저, 헌법 전문과 총강에 대한민국이 지방분권을 지향한다는 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명시된 '지방분권'의 국가 지향성이 헌법해석 및 법률 제정ㆍ해석의 지침이 되는 원리로서 작용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지방분권 국가'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정신에 따라 중앙정부의 역할과 지방정부의 역할을 구분하고, 지방의 역할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조례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이에 따른 사무와 행정, 조직, 인사 등에 관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방의 재정역량을 강화하여 지방재원 총량을 증대시키고, 지방세를 중심으로 자주적으로 재정운용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어야 한다.
헌법은 한 국가의 정체성이자, 통치질서이며 공감대의 결정체이다. 헌법을 개정하는 순간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가치 중 하나는 지방분권이다. 새로운 헌법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비전으로써 '지방분권'의 가치가 담겨야 할 것이다.
최근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사태로 인해 불거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정국에서 조기 대선과 더불어서 개헌논의도 함께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국회는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개헌논의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도대체 이게 나라냐"며 많은 이들이 한탄하는 국정농단사태를 지켜보면서 어떤 이는 이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게 그나마 지방자치가 온전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이는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세력이 지방정부의 사업에는 쉽사리 접근하지 못한 데에 주목한 표현이다. 만일 지방자치, 특히 주민들이 직접 뽑은 민선시장과 지방의회가 없어 과거처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지자체가 꼼짝없이 그대로 따라서 움직였다면, 여러 지자체가 추진하는 사업들도 이들 국정농단세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이니, 한편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니 권력분산과 권력통제의 측면에서 지방자치가 그만큼 중요하다.
현행헌법과 함께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벌써 사반세기가 훌쩍 흘렀다. 그간 보여준 지방자치의 현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아쉬운 점도 분명 있지만, 지방자치가 없는 헌정(憲政)또는 시민사회를 이제 더 이상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나름 깊이 뿌리내렸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어떻게 지방자치를 지금보다 더 활성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다 숙고하고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자치'는 말 그대로 스스로 다스림을 뜻하기에 먼저 '자율', 즉 자기입법을 전제한다. 스스로 정하지 않은 규범을 따르는 것은 자치와 자율이 아니며, 이는 타율과 복종에 다름이 아니다. 한 국가 내에서의 최고 권력인 주권 개념을 처음 창안한 프랑스 사상가 쟝 보댕(J. Bodin)이 주권의 핵심은 입법권에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따라서 조례의 제ㆍ개정으로 나타나는 자치입법은 지방자치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공히 인정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행헌법 제117조 제1항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령의범위 안에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즉 이로써 제정된 조례가 상위의 법률에 위반해서는 아니 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자치입법인 조례의 제정에 반드시 법률의위임이 있어야 하는지가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법률이 주민의 권리ㆍ의무에 관한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아무런 범위도 정하지 아니한 채조례로 정하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하였다고 하더라도 행정관청의 명령과는 달리 조례도 주민의 대표기관인 지방의회의 의결로 제정되는 지방자치단체의 자주법인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이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주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제정할 수 있다'고(대판 1991. 8. 27. 96누6613) 판시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조례의 제정권자인 지방의회는 선거를 통하여 그 지역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주민의 대표기관이고 헌법이 지방자치단체에 포괄적인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는 취지로 볼 때 조례에 대한 법률의 위임은 법규명령에 대한 법률의 위임과 같이 반드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할 필요가 없으며 포괄적인 것으로족하다(헌재 1995. 8. 27, 92헌마264 등)'고 밝힌 바가 있다.
독일에서는 조례에 있어서 '법률우위원칙'이 적용되지만, '법률유보원칙'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적인 입장이 최고법인 헌법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 국가의법질서 내에서 국회입법권과 지방자치 등 헌법상의 여러 원리를 고려하는 가운데 법률과 조례의 관계를 조화적으로 이해하는 바람직한 방법이다. 조례가 최고법인 헌법은 물론이고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된 국회에서 제정한 상위의 법률에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한데, 총리령이나 부령 보다도 하위의 규범이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전통적인 '규범단계설'은 지방자치가 지금처럼 헌법상 제도로서 정착되기 이전에 마련된 낡은 이론이다. 지방자치가 헌법상 원리로 승격되고 변화된 오늘날 법질서 내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인 조례에 대한 새로운 위상모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적어도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하는 조례에 대해서 '자치법률'의 명칭과 위상을 부여하자는 주장이 일응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조례, 즉 자치법률은 단지 효력에 있어서 지역적 제한성을 지닐 뿐, 주민의 복리에 관한 한 해당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적용됨이 마땅하다. 각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복리를 위해 경쟁적으로 다양한 자치입법을 만들고, 나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가장 최적화된 모델을 모색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본질에 부합한다. 무엇보다도 자치의 핵심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의 복리등에 관한 자치사항에 있어서 국회는 구체적인 입법을 가급적 자제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일종의 소위 '윤곽법률'의 제정으로 만족해야 한다. 이 윤곽법률의 범위 안에서 각 지자체들이 자신들의 형편에 맞게끔 구체적이고 타당한 자치입법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만일 지금의 개헌논의가 향후 보다 구체화된다면, 정부형태 변경뿐만 아니라 지방분권이 보다 강화되는 개헌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서 강조했듯이 지방분권의 첫걸음은 자치입법의 확대에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탈리아 사상가인 카타네오(C. Cattaneo)의 말을 옮기면서 짧은 글을 맺는다. "지자체들이 바로 나라다. 한 나라는 지자체들에서 자유를 가까이 체험하고 배우면서 커간다."
입법권의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지면, 적어도 그 범위에서 행정권과 사법권의 지방분권화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각 자치의회가 제정한 법률 또는 조례를 해당 자치정부가 집행하고 또는 각 자치법원이 해석ㆍ적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지난 70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단위에서 입법-행정-사법의 권력 분립이 작동했듯이, 지방분권형 헌법 하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 단위에서도 입법-행정-사법의 권력 분립이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에서는 국민이자 주민인 주권자들의 신임을 확보하기 위하여 헌법적 가치를 더 잘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경쟁이 벌어지게 된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도 이른바 공간적 권력 분립이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앞서 언급한 주민으로서의 자치권과 입법권의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지더라도, 행정권의 측면에서는 몇 가지 보완점을 생각해야만 한다. ①행정권이 정부 및 각 자치정부에 있음을 선언하면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헌법적 원리로서 보충성의 원칙을 규정하고, ②헌법에는 정부에 관한 규정만을 두고, 각 자치정부의 조직 및 구조는 당해 자치의회가 법률 또는 조례로 정하도록 하며(자주조직권), ③과세권의 지방분권화를 위하여 국세ㆍ자치세ㆍ공동세의 3원 구조를 명시하면서 자치세의 세목과 세율은 각 자치의회가 정하도록 하고, ④정부와 자치정부 간, 자치정부 상호 간 사무 위임의 재정부담원칙을 규정하는 동시에 수평적ㆍ수직적 재정조정제도의 헌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사법권의 측면에서는 자치법원 및 자치검찰의 시행에 관하여 시기상의 고려가 필수적일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이후 25년에 걸친 지방자치의 경험으로 입법 및 행정의 영역에는 어느 정도 자치 역량이 쌓였지만, 사법의 영역은 아직까지 국가 사법의 유제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분권사법ㆍ자치사법의 시행을 향후 추진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한 뒤, 유럽의 많은 국가들처럼 재판권의 분화를 통한 전문법원화와 사법행정권의 분리를 제도화함으로써 사법 내부의 기능적 분권화를 추진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 아닐까?
간단히 말하면, 이는 ①헌법 안에 명문 규정을 두어 좁은 의미의 사법권인 재판권을 일반재판권, 행정재판권, 가사재판권, 노동재판권, 특허재판권으로 구분하고, 이를 그 각각을 담당하는 최고법원과 각급법원이 행사하도록 하고, ②넓은 의미의 사법권 가운데 법관의 인사권을 포함한 사법행정권을 별도로 구성되는 사법행정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하며, ③헌법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권한을 헌법재판소로 일원화하는 방안이다. 제도의 구체적인 설계에 관해서는 사법의 민주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향에서 그동안 제출된 여러제안과 함께 유럽 각국의 사법 통치구조들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