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 푸른 바다와 인접해 볼거리, 먹거리 많기로 소문난 부산의 대표 문화유산은 의외로 깊은 산속에 위치해 있다.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금정산 깊숙한 곳에서 천년의 역사를 이어온 사찰, 범어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찾아가본다는 부산의 문화유산 범어사. 다가올 봄에는 범어사에서 부산의 살아 숨쉬는 역사와 문화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부산시 금정산에 위치한 범어사는 신라 문무왕 18년(678년)에 의상대사가 화엄종 10찰 중 하나로 창건한 절이다. 지리서 <동국여지승람>에는 '동국(東國)의 한 명산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는데, 하늘에서 금빛 나는 물고기가 내려와 이 우물에서 놀았다. 그래서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梵魚寺)라고 불렀다'라는 재미있는 기록이 남아 있다. 창건 당시에는 문무왕의 명으로 지어 요사만도 360개의 방사이고, 토지가 360결, 소속된 노비가 100여 호에 달하는 대규모 사찰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거의 폐허가 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후 조선 광해군 5년(1613년)에 묘전스님, 해민스님 등이 크고 작은 중건과 보수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선찰대본산의 명맥을 지켜온 총림

오늘날 범어사는 합천의 해인사, 양산의 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린다. 특히 선불교의 전통이 강해서 선찰대본산이란 이름으로 유명하다. 역대 범어사를 거쳐간 고승으로는 의상대사를 비롯해서 원효스님, 표훈스님, 동산스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전통적인 수행 공간을 지속적으로 확충해서 2012년에는 금정총림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여기서 총림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어사를 포함해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동화사, 쌍계사를 8대 총림이라 부른다.

천년의 역사를 견뎌온 아름다운 건축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범어사는 조계문과 대웅전을 비롯해 삼층석탑, 당간지주, 동종 등은 물론, 수많은 전각, 요사, 암자 등의 문화재로도 명성이 높다. 범어사에 들어서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일주문이 조계문(보물 제1461호)인데, 높은 돌 위에 짧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 보기에도 안정되고 전통의 건축미가 은은하게 배어 나와 감탄을 자아낸다.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는 법리를 담고 있어 삼해탈문이란 별칭으로도 부른다.

범어사를 대표하는 대웅전(보물 제434호)은 조선 중기 불교건축의 아름다움과 조선시대 목조공예의 우수함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석가모니 불상만을 모시는 일반 대웅전과 달리, 범어사의 대웅전은 미륵보살과 가라보살을 각각 석가모니의 왼쪽과 오른쪽에 함께 모시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 대웅전 앞에는 삼층석탑(보물 제250호)이 자리해 있는데, 신라 말기의 화강석제 석탑으로, 2중 기단(基壇) 상하 기단에 큼지막한 안상(眼象)을 새겨넣은점이 특이하다. 이름이 조금 생소한 당간지주는 깃대를 고정하기 위하여 사찰의 입구나 뜰에 세우는 두개의 돌기둥을 말한다. 범어사의 당간지주(부산유형문화재 제15호)는 당간의 받침돌이 모두 사라지고 양쪽의 두 기둥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돌을 다듬은 흔적이 고르지 않아 둔중한 감이 있으나, 장식이나 조각이 전혀 없어 소박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범어사 종루에 매달려 있는 동종(부산유형문화재 제90호)은 높이 127.0cm, 종구 지름 92.5cm인 규모가 제법 큰 범종이다. 조선 후기 범종의 대표작으로 언급되기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범어사 곳곳에는 청련암, 내원암, 계명암을 비롯한 11개의 암자는 물론, 수많은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어 보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또한,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된 등나무 군생지가 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이곳의 6,500여 그루의 등나무는 보라빛 등나무 꽃을 피워 장관을 연출한다.

부산시민에게 사랑 받는 부산의 대표 사찰, 범어사는 음력 3월에 3일간 보살계 수계산림을 열고, 음력 5월 단오에 고당제를 여는 등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찰이다. 뿐만 아니라 사찰에서 수행자들의 일상과 수행의 일부를 경험하는 사찰문화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범어사 템플스테이의 주제는 '참선'이며, 이는 수행자가 자기의 본래 면목인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새로운 봄, 더욱 뜻깊은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면, 아름다운 자연과 오랜 역사의 문화유산, 깨끗하고 정갈한 기운으로 가득한 범어사를 찾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