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은 모르면 단순하고 투박한 돌무더기일 뿐이지만, 선사시대의 사회상뿐만 아니라 정치ㆍ문화체계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는 문화유산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고인돌 유적 강국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 곳곳에는 전 세계 고인돌의 40%를 차지하는 3만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다양한 규모와 형태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더욱 가치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전라북도 고창군ㆍ전라남도 화순군ㆍ인천광역시 강화군 고인돌 유적에는 수많은 고인돌이 밀집해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고창 고인돌 유적지’

전라북도 고창은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 밀집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고창 고인돌은 전라북도 고창군 죽림리를 중심으로 상갑리, 도산리 등 일대에 약 2,000여 기가 무리 지어 있다. 넓은 들판에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고인돌이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은 깊은 인상을 선사한다. 고창 고인돌은 고창 고인돌만의 뚜렷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다양한 크기는 물론,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는 것이다. 굄돌 또한 괴석형, 직사각형, 긴사각형 등 형태가 다양하고, 덮개돌은 작은 것은 몇십 톤 정도에서 큰 것은 수백 톤에 이르는 등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른 하나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만 있는지상석곽식 고인돌은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중간 형태로 무덤방이 반지하처럼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고창 죽림리 앞 도산리 마을에는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서 가장 유명한 탁자식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은 굄돌의 높이가 1.9m로 강화도의 부근리 고인돌보다 낮고 굄돌 사이의 폭도 좁은 편이지만, 고창 고인돌 유적지에 있는 탁자식 고인돌 중 가장 보존 상태가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채석장이 함께 있는 ‘화순 고인돌 유적지’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전라남도 화순,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강 주변의 도곡면, 효산리, 춘양면 등 일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전체 596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덮개돌의 무게가 100톤 이상 되는 커다란 고인돌부터 200톤이 넘는 고인돌도 분포되어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매우 다양한 지형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벼농사를 짓는 논 한가운데나 논 주변에 조성된 것도 있고, 거대한 바위산이나 산과 산을 이어주는 고개 등에 조성된 것도 있다. 화순 고인돌이 모여 있는 산은 숲이 울창해서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특징 때문에 처음 만들어질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고인돌 위 산기슭에서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함께 발견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채석장 아래에는 덮개돌의 채석 흔적과 채석하다 중단한 석재 등이 남아 있고, 그 아래에는 여러 형태의 고인돌이 있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이나 고인돌 축조에 따른 일련의 과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유명한 고인돌로는 세계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핑매바위 고인돌이 있다. 돌을 주워 던진다는 의미에서 핑매바위라 이름 붙여졌는데, 마고할매 전설, 장군바위 전설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인돌 위 구멍에 왼손으로 돌을 던져 들어가면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섬 속의 특별함 ‘강화 고인돌 유적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고려산 기슭의 하점면 부근리, 삼거리, 고천리 일대에는 작지만 알찬 강화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 전체 157기의 강화 고인돌은 군집을 이루기보다는 흩어져 있는 모습을 보인다. 강화 고인돌 유적지는 고창과 화순보다 규모가 작아 협소해 보일 수 있지만, 강화가 섬이라는 지형적 특성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숨겨진 특별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섬은 육지에 비해 지형적 특성상, 생활여건상 물자조달이 어려워 고인돌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 고인돌은 구릉, 평지, 산마루 등 다양한 곳에 세워져 있다. 이는 청동기 시대에 강화에 살았던 집단이 역동적이고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공동체였음을 시사해 준다. 부근리 밭 가운데 있는 탁자식 고인돌은 우리나라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축에 들 뿐만 아니라 세련된 조형미까지 갖춘 고인돌로 일찍부터 명성이 높다. 이 고인돌은 덮개돌 아래에 2개의 대형 굄돌이 세워져 있어 무덤방이 마치 긴 통로처럼 되어 있다. 고임돌은 동쪽으로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고, 덮개돌은 거의 지면에서 수평으로 놓여 있다. 시신이 놓이는 돌방이 땅 위에 노출된 탁자식 고인돌은 대부분 일찌감치 도굴당하거나 훼손되어 부장품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는데, 부근리 고인돌 역시 부장품이 없다. 무덤의 기능보다는 어느 집단을 상징하는 기념물이거나 제단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은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지난 2000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과는 반대로, 고인돌은 매년 꾸준히 훼손되거나 소실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번 가을에는 고인돌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보존하는 것이 더욱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마음에 새기며 단풍과 어우러지는 고인돌을 만나러 가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