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습니다. 아직 개화가 아닙니다" 지난 3월 20일 도쿄 야스쿠니신사 내에 도쿄 기상대의 '벚꽃 표본목'을 확인한 기상대 직원의 말이다. 방송 다음날에는 여섯 송이의 벚꽃이 피어 3월21일 "도쿄의 개화"가 선언되었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봄이 오면 벚꽃의 개화를 기다리고, 일기예보에서는 남쪽지방부터 시작되는 '벚꽃의 개화와 만개 시기'를 연일 중계한다. 지도상에 벚꽃 개화일자를 표시한 선을 소위 「사쿠라 전선」이라고 한다.

기상대의 개화선언과 함께 만개 기간이 짧은 벚꽃을 즐기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은 하나미를 준비한다. 벚꽃으로 유명한 지역에는 야간 조명이 설치되고 여행사에서는 전국 유명한 벚꽃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여행상품이 등장하고 직장에서 신입사원은 좋은 장소를 확보하라는 임무를 받아 며칠 전부터 자리 확보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어느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하나미를 위하여 너무 넓은 공간을 장기간 점유하는 바람에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관공서의 회계 년도가 4.1일부터 시작된다. 관공서를 포함한 회사의 대규모 인사이동, 학교의 졸업과 입학도 3월말에서 4월초에 모두 이루어진다. 결국 3월말에서 4월초 까지는 많은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들이 공존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종류의 벚꽃이 만개하여 헤어짐의 슬픔을 위로해 주고 또 다른 시작에 대한 부푼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학교 운동장, 신사, 직장 사무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공원... 일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 벚꽃이다. 벚꽃의 개화 소식에 시민들은 왠지 흥분하고 도시락을 준비하여 벚꽃나무를 찾고 그 아래서 직장 동료들과의 화합과 친구와의 우정, 가족간의 화목을 도모하기도 한다.

하나미의 시작은 나라시대 귀족층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라시대에는 중국에서 전해진 매화를 감상했으나, 헤이안시대에 접어들어 벚꽃으로 바뀌었으며 가마쿠라, 무로마치시대를 거치면서 귀족층의 하나미가 무사계급까지 확대되었고 에도시대에는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확대되었다. 이때부터 벚꽃의 품종개량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하천정비 공사 시에는 제방에 벚꽃나무를 배치하는 등 전국에 걸쳐 벚꽃나무를 심었다. 이러한 결과 생활공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벚꽃은 서민들에게까지 사랑 받게 되었고 하나미가 하나의 서민문화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메이지시대에 접어들어서는 많은 벚나무가 있던 대규모 정원, 다이묘의 저택 등이 훼손되면서 벚꽃의 멸종 위기도 있었으나, 현재 일본에는 약 300종의 벚꽃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 가장 널리 분포된 종은 소메이요시노라는 품종으로 메이지시대 이후 도로변, 하천부지, 공원 등에 집중적으로 심어져 있으며 학교 교문 주변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최첨단의 컴퓨터 게임이 만연한 현대에 많은 일본인들은 벚꽃이 피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무엇보다 벚꽃에 친근감을 느끼며 하나미를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벚꽃을 좋아하는 것일까? 일본어에 "하나후부키"라는 단어가 있다. 벚꽃이 떨어져 꽃잎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표현한 단어다. 어느 학자는 떨어질 무렵의 벚꽃이 전통적인 일본인의 정신문화와 비슷하다고 한다. 나뭇가지 끝까지 꽃으로 가득한 화려함과 드러내지 않는 은은한 향기,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친근감.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헤어짐과 새로운 만남의 추억, 꽃이 피어있는 기간이 짧고 한꺼번에 떨어지는 모습, 일본인들은 이러한 벚꽃의 특성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초 히가시니카노역 철도 변의 벚나무 몇 그루를 철도회사에서 벌목한 사건이 있었다. 태풍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선로에 떨어져 전철의 운행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어나 결국 작업이 중단되었다.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일본사회에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사건인 만큼 한동안 언론의 화재가 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일본 각지의 벚나무는 패전 후 심어져 7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많다. 때문에 나무의 유지관리, 안전관리, 병충해 등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각 지역에서는"벚꽃 보존회"등 시민의 자발적 봉사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벚꽃을 지켜나가고 있다.

도쿄 다이토구에 위치한 우에노공원은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벚꽃이 만개할 때면 1일 1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방문한다. 올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벚꽃을 즐겼는데, 특이한 점은 방문객의 60% 정도가 외국인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인들의 생활의 일부가 된 전통이 이제는 하나의 관광 상품화 되어 많은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을 방문한 젊은 일본인에게 한 기자가 "당신에게 벚꽃은 어떤 존재입니까?"라고 물었다. 젊은이는 "벚꽃을 보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라며 만개한 벚꽃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