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홍환 (협의회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중앙정부의 정책결정에 의해 지방은 행·재정적 부담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지방행정청으로서의 지위와 자치단체로서의 지위를 이중적으로 갖기 때문이다. 즉, 중앙정부가 국민에 대해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결정할 경우 대부분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를 통하여 정책이 집행되며, 이때 지방자치단체는 자치단체로서가 아니라 중앙행정기관의 하부기관인 지방행정청으로써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재정법, 국고보조금 관리법에서는 이러한 점을 보다 분명히 하고 있는데, 중앙정부의 정책목적사업인 국고보조사업을 지방자치단체 자체사업보다 우선하여 지방예산에 계상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행정시스템의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갖는 자치단체로서의 지위가 제한된다는 것에 있다. 지방자치가 주민의 뜻에 따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앙정부 정책결정이 이러한 지방자치 기능이 발현될 수 없는 조건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한데, 중앙정부 정책결정이 지방재정부담을 유발시켜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재원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이다.

 

구체적 이해를 위해 지방재정 현황에 대해 살펴보면, 우리의 지방재정구조를 간략히 정리하면 총 재정의 80%를 사업비로 투입하고 20%는 인건비 등 경상경비이다. 총 재정의 80%를 차지하는 사업비는 국가정책목적 달성을 위한 국고보조사업비가 45%를 차지하고 나머지 35%는 명목상 자체사업비다. 그런데 35%의 자체사업비를 살펴보면, 교육비 특별회계 전출금과 같이 법률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반드시 재정을 투입하도록 하는 법적?의무적 경비가 상당부분 차지하며, 이밖에 필수공공서비스 유지관리 비용인 공원 및 녹지관리, 가로등과 같은 시설물 관리 등 성격상 경상적 경비 등이 포함되는데, 이를 합하면 약 27%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은 지방자치단체 재정의 약8%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러한 거시적 접근은 지방재정 전체를 두고 분석한 것이기에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 자율적으로 활용할 있는 재원이 해당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8%가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 경기와 같이 재정력이 좋고 재원규모가 큰 자치단체를 포함한 것이기에 현실적으로 자치구의 경우는 자율재원이 거의 없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이와 같은 지방재정여건은 주민에 뜻에 따른 지역문제 해결이라는 지방자치제도가 실질적으로 구현될 수 없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재정여건이 지방자치단체의 방만한 재정운용의 결과가 아니라 앞서 제기한 바와 같이 중앙정부가 지방재정부담을 수반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영유아보육사업 확대, 기초연금 도입 등 최근 몇 년간 지방자치단체가 반드시 부담해야 하는 재원의 규모가 대폭 확대되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중앙정부가 이처럼 지방재정부담을 수반하는 정책을 결정할 경우 지방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가장 실효력 있는 제도로서, 지방자치법 제165조에 지방자치단체 협의체가 안전행정부 장관을 거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제도는 마련되어 있으나, 그 반영 여부는 전적으로 중앙정부 임의사항일 뿐이다. 따라서, 지방재정부담을 수반하는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이는 크게 직접적 협의 제도를 마련하는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으로서 구속적 있는 지방의견 반영제도를 마련하는 방안 등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첫째, 직접적 협의제도는 개별 중앙부처가 일정 규모 이상의 지방재정부담을 수반시키는 정책을 입안할 때 지방자치단체 협의체 등과 협의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사례와 같이 중앙정부의 대표인 대통령과 광역자치단체장의 협의체인 중앙-지방 협의기구를 제도화 하고 이를 통해 재정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이다. 둘째, 간접적인 방법으로서 국회와 국무회의 의안제출에 있어 부수서류로 지방자치단체 협의체의 의견을 첨부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이 경우 직접적 협의제도가 국회를 제외한 정부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밖에 국회 의안심의 과정에서 지방대표가 참여하는 지방재정영향평가제도 도입 등도 검토할 수 있다.

 

지방자치 제도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국정운영시스템으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서 국정을 효율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지방이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의 보장이 필요한 만큼 중앙-지방 재정부담 협의제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