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있다. 박근혜대통령은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온 잘못된 행태들을 바로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틀을 다시 잡을 것”이라며 “내각 전체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국가개조론’을 꺼내 들었다. 이어서 7월 8일 정홍원 총리는 국가개조 작업의 4가지 방향을 발표했다. ‘공직개혁’과 ‘부패척결’, ‘안전혁신’과 ‘의식개혁’에 전문분과를 두고 광범위한 국가개조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로 노정된 한국의 공직사회에 만연된 적패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대응인 셈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가의 무능을 TV를 통해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부 관료집단의 잘못된 행태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왜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필자는 이런 사회현상의 주요 원인들 중의 하나를 권위주의에서 찾고자 한다. 특별권력관계에서 권한을 위임 받은 정부 관료집단은 특별한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일반국민이 갖지 못하는 인허가나 규제 등 특별한 권한을 행사한다. 꽤 오래 지속된 조국근대화의 기수라는 ‘명예’ 속에서 정부 관료집단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까지 ‘관료적 권위주의’가 자라고 있었다. 그것이 세월호 참사로 적나라하게 표출되었다. 박근혜대통령이 지적한 ‘암덩어리’는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일 것이다. 권위는 어떤 행위나 의견 혹은 믿음을 지지하고 방어하는데 사용된 인용자, 혹은 순종을 허락하는 힘이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개인의 사고와 행위에 반한 권위에 무작정 복종하는 체제나 원리이다.

법의 집행과 권한의 행사에서 권위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잉태되는 권위주의는 반민주주의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의 구현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그래서 권위주의는 정의로운 사회체제에서 암덩어리가 된다. 관료적 권위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은 이권을 갖기 위해 관료들은 비생산적인 활동에 경쟁적으로 사회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이른바 지대추구의 행태가 만연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좌절감을 주게 된다. 권위주의의 틀에서 이탈한 자는 결국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알면서도 빠져들기를 강요한다. 어느 새인가 사회의 암덩어리로 자라난 이 거대한 권위주의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우리사회의 문제를 진단하는 또 다른 설득력 있는 주장도 있다. 엄기호는 「단속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에게 부재한 것은 실존적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사적인 경험을 공적인 언어로 전환하는 관계의 부재다. 이런 관계가 부재함으로써 자신의 경험을 남도 듣고 참조하면 좋은 이야기로 만드는 능력 또한 전승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참조점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이 사회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게 누군가의 참조점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사회적 존재감을 획득하고 공적인 존재로 설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을 공적 존재로 만들어가는 능력이 만들어질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왜 가치 있는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배양의 기회가 사라진 것일까? 여기서 필자는 다시 한 번 개인의 생각에 반한 권위에 무작정 복종케 하는 권위주의, 특히 관료적 권위주의를 주목한다. 그 권위주의가 우리사회를 살맛 나는 ‘우리관계’가 아닌 방관자적인 ‘그들 관계’만 남게 했다.

박근혜정부는 한국사회의 적패를 치유하고자 고민하고 또 노력하고 있다. 창조경제, 암덩어리 규제의 완화, 비정상화의 정상화, 국가개조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 노력들을 관통하는 의미를 찾자면 자유의 확장과 관련된다. 무엇인가에 짓눌리고 있는 것을 자유롭게 해서 정상화하자는 것이 강하게 깔려있다. 문제는 그 자유의 확장을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 이다. 자유의 확장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나는 국가로부터의 자유확장이고, 다른 것은 국가에 의한 자유확장이다. 자본주의의 역기능이 많은 현대에는 후자가 더 필요하다. 그런데 관료적 권위주의가 잉태할 수 있는 위험은 바로 후자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요구되는 국정관리와 관련된 국가개조는 어떻게 해야 자유의 확장에 가장 잘 근접할 것인가? 필자는 자유의 확장을 잘 달성할 수 있는 지금에 유효한 제도적 틀은 지방분권적 국가운영체제의 구축이라고 믿는다. 중앙과 지방의 실질적이고 정당한 권한의 분점은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고 이미 우리가 눈으로 확인한 권위주의, 특히 관료적 권위주의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더 높은 권위로 재단하여 누르는 과정에서 암세포처럼 자라나는 또 다른 권위주의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

정당한 권한과 자격을 가지고 참여와 주장을 할 수 있는 ‘중앙’에 대한 ‘지방’이 있어야 한다. 지방에 반한 중앙의 권위에 정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실질적 권한이 지방에 있고, 지방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제도적 틀이 있다면 권위주의는 가까이에 서있는 주민들에 의해서 견제되고 감시될 것이다. 다양한 지방의 눈과 상식 즉, 사적인 경험이 공적인 언어로 전환되는 건전한 ‘우리관계’가 사회적으로 복원될 것이다.

다시 한번 자문해 보자. 어떻게 하면 누구도 심각하게 의식하지 못한 동안에 암덩어리로 성장해버린 관료적 권위주의를 개조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권위로 누를 것인가? 더 높은 권위로 해석하고 재단하여 지시할 것인가? 많은 지식과 경험은 ‘모든 이의 자유확장’이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지혜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국정관리체제에서 상호견제의 제도적 틀, 바로 지방분권적 국정운영체제구축의 필요성이다.

지방분권적 국가운영체제의 구축을 위한 과제와 계획(안)이 이미 대통령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에서 수립되어 의견수렴을 거치고 있다. 계획에 담긴 내용들이 착실히 추진되길 바란다. 지방분권적 국가운영체제의 구축을 위한 보다 근본적 제도의 재구성이라는 점에서 이미 다른 글에서 지적했던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지방자치단체의 자기결정권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근본적 대책으로 헌법개정이 필요하다. 자치단체의 자기결정권 확대를 주장해온 견해들에 주로 포함된 내용 중의 하나는 지방자치법 제22조 본문(‘법령의 범위 안에서’ 조례제정)과 단서(의무부과나 벌칙을 정할 때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의 개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헌법적 애로에 막혀있다. 즉, 헌법 제117조 제1항(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제정)을 그대로 두고 지방자치법을 ‘법령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한도 안에서’로 개정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에 명시된 법률유보조항은 헌법 제37조 제2항(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법률로써 제한)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합헌판결이 있는 상태다. 헌법 제37조에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내용은 ‘최대보장의 원칙’을, 그리고 헌법 제117조와 제118조에 규정된 지방자치단체라는 제도는 ‘최소보장의 원칙’을 적용하는 헌법적 해석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자주입법권 및 그로 인한 자주재정권은 헌법적 애로에 막혀있다(이러한 법리구성을 극복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으나 국회와 실무자들은 이러한 해석을 따르고 있음). 특히, 헌법 제117조 제1항에 따라 각종 행정입법(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에 의해 자치입법권은 크게 제약되고 있다. 따라서 헌법개정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자주입법권 확대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둘째,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재설계다. 특별지방행정기관 정비는 역대 정부에서 주요과제로 추진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해묵은 과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지방에서 멀리 있는 중앙이 공간적으로만 가깝게 와서 지방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특성을 가진 것이 특별지방행정기관이다. 그래서 ‘우리관계’가 아닌 ‘그들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주민에게 가장 가깝게 있는 정부가 우선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문제해결에 참여하게 조직과 기능을 재설계해야 한다. 단순한 기능이양의 차원이 아닌 지방행정체제와 정부조직의 개편이라는 차원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개편과정에서의 ‘관료의 정치’가 경계되어야 한다.

셋째, 자치단체의 기관구성 다양화를 생각해야한다. 자치단체 기관구성방식은 1948년 제헌헌법 제8장의 지방자치 규정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1961년 이후 지방자치는 중지되고 30여 년간 중앙집권방식의 지방행정기관이 운영되었다. 1995년에 지방자치가 온전히 복원되면서 이른바 ‘기관분립형’ 기관구성형태가 정착되었다. 문제는 자치단체의 기관구성에 있어서 지방주민의 선택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1949년 7월 제정·공포된 지방자치법에서부터 자치단체의 기관구성방식을 ‘획일적’으로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획일성은 제정 당시의 사회상황을 반영했을 것이다. 민주제도의 정착, 통합된 사회질서의 필요, 지역 간 평등성의 구현 등의 요구가 있었을 것이다. 관료주의적 사회문제해결방식이 더 선호된 결과로 이해된다. 이제 우리는 자치에 관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변화된 사회에 걸 맞는 자치제도가 필요하다. 획일성은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획일적 자치제도를 국가에 의한 자유확장으로 해석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다양하고 복잡하다. 자치단체별 인구규모는 1만명에서 100만명에까지 다양하다. 인구밀도도 ㎢ 당 19명에서 3만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 자치단체마다 재정적 여건도 너무나 다르다. 여기에 도시적 특성과 농어촌 특성 등을 감안하면 자치단체의 관리방식을 구조적으로 달리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변화의 방향은 주민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주민의 능동적 참여를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전한 사회성숙을 기대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것처럼, 타인의 지혜는 자신을 풍성하게 하며, 더 큰 이해와 우정 그리고 연대로 나아가게 한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고, 정의는 관용과 협력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정의 구현의 방해물로 권위주의와 체제정당화의 욕구를 지목하고 있다. 획일성에 갇힌 제도를 변화된 사회에 맞게 재설계해야 한다. 이들 언어들은 모두 분권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것이 국가개조가 지방분권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