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독일주재 박정롱 자문위원

그 동안 시라고 하면 조용한 닫힌 공간에서 다소 정적으로 작가와 독자가 교감하던 예술이었다. 이러한 시가 이제 21세기를 맞으며 대중과 다이내믹하게 호흡하는 축제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이 베를린 시의 축제(Poesie festival Berlin)다.

베를린 시의 축제는 2014년 올해로 15회째를 맞이하면서, 시가 다양한 디지털 매체와 결합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며 또한 인문학의 부흥을 기대하는 세계적인 여론의 관심 속에 주목받는 축제가 되었다.

시가 이제 더 이상 조그만 골방에서, 또는 카페에서 낭송하고 대화하는 것 같은 닫힌 공간의 예술이 아니라 광장과 거리로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베를린 시의 축제다. 베를린 시 축제에서는 일반 대중과 시인, 다른 장르의 예술인들이 시를 주제로 하여 시를 낭송하고 시에 사운드를 넣고, 시와 비디오를 결합하며, 춤과 율동을 넣어 거리 공연을 하며, 시를 주제로 한 마켓을 운영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한 마디로 시가 글로벌 대중을 상대로 다양한 예술장르와 결합하고, 축제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21세기에는 시가 어디까지 왔는가, 어떻게 변모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축제다.

그래서 시가 이제 정적인 문학을 떠나서 전 세계의 소리와 같이 선보인다고 해서 2014년 베를린 시축제의 주제는 “세계의 소리”로 정해지기도 하였다.

축제의 현장으로 가면 갑자기 시가 현란한 춤과 음악을 만난다. 시와 리듬이 어울려 역동적인 동작으로 변하는가 하면, 힙합공연에 시가 가미되어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래퍼들은 사회의 온갖 일상과 시사문제를 시구절로 만들어 노래함으로써 참여문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14년은 유럽에서 특별한 년도이다.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는 해다. 1차 대전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또 표현의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베를린 시축제는 시를 통해 보여 주었다. 1차 대전의 흔적은 관련 20개국의 서사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번 축제에는 벨기에, 프랑스, 독일, 영국 등 6개국에서 시인들이 참여하여 시를 통해 과거 100년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또한 연초부터 우크라이나 사태가 동서유럽의 대립을 자극하고 있었다. 올해 베를린 시축제에는 우크라이나 마이단에서 개혁과 개방을 외치던 시민들의 운동을 시로 기록한 다수의 우크라이나 시인들이 참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 후보로 다가갔던 고은 시인이 초대를 받아 본인이 직접 자작시를 낭송함으로써 축제 관람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고은 시인은 시가 이제 열린 광장으로 나왔다는 메시지를 잘 전달하여 주었다.

고은 시인의 시 낭송은 정동(靜動)이 교차하는 예술이었다. 한참 속삭이다가, 얼굴에는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표현하고, 외치다가, 또박또박 낭송하다, 쏘아보며 꾸짖기도 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시가 마냥 잔잔한 수평선일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심사가 뚜렷했다고 할까. 그러다가 독일어로 된 원문이 조용히 낭독될 즈음이면 관람객들은 고은 시인이 시어로 새긴 심오한 뜻을 조용히 음미하게 되었다.

베를린 시의 축제는 매년 6월경 개최되며 인문학의 부족을 아쉬워하는 세계적 여론을 등에 업고 성공한 축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이 축제에는 시를 주제로 마켓이 개설되며, 세계의 유명출판사에서 시집을 선보이고, 오래된 시 콜랙션, 영상에 담은 작품, 사운드와 시가 결합한 상품들을 판매한다. 그리고 시를 주제로 한 패션쇼도 열리고, T-셔츠에 시를 프린팅 해주거나 시를 새겨진 셔츠도 살 수 있다. 이 행사는 베를린 문학워크숍(Die Literaturwerkstatt Berlin)에서 주관하며 독일 주재 각국 문화원에서도 참여한다.

(관련웹 : http://www.literaturwerkstatt.org/en/literaturwerkstatt-berlin/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