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확장으로 지방자치의 제2도약을 시작하자

 

민주주의는 투표에 의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과 권력의 분점에 의한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확장하는 두 가지의 핵심적 내용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우리는 선거과정에서 두 가지의 내용을 모두 실현하는 것을 원한다.

 

그 동안의 지방선거가 정권심판에는 성공했지만 풀뿌리 자치에는 실패한 선거, 지방정치는 있으나 지방자치는 없는 선거, 자치감성은 있으나 자치이성은 없는 선거 등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래서 선거 후에는 지방에 많은 갈등들이 표출되어 지방이 잘 화합되지 않는 것을 보아왔다. 선거 이후에도 지방자치 보다는 지방정치가 지속되는 예비적 지방선거과정이 지속되는 것이다. 지역의 공동체의식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점점 지방이 온기 없는 장소로 세속화되어가고 있기도 하다. 공적 영역이 축소되고 사적 영역만 과도하게 확장되고 있다. 자본주의사회 그리고 현대사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현주소이다.

 

민주주의 이론과 공공정책 간의 연결은 중앙이나 지방이나 할 것 없이 ‘민주적 거버넌스의 원리구현’이라는 개념과 함께 시작한다. 지방의 공공정책들을 이행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개입하는 경우, 민주적인 정치적 선택 과정에 의하여 올바르게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만이 앞에서 말한 민주주의의 두 가지 핵심내용이 구현될 것이다. 상대편이 수긍할 것이고 지방의 공동체의식이 자라날 것이다.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으니 당선자들은 저마다 지방의 주요 공공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집행할 것이다. 공공정책들을 실행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과 결정이 ‘승인의 가치가 있는가?’를 어떤 기준에 의해 평가해야 할 것인가? 어렵지만 중요한 질문이다.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사람들이 이 질문에 답하려 할 때 민주주의는 성숙되고 풀뿌리 자치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정책수단의 평가는 궁극적으로 ‘민주적 가치의 달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는 선거권의 확장, 민주적 통제영역의 확장, 그리고 신뢰의 확장이라는 세가지 의미를 갖는다. 이제 선거권의 확장이나 민주적 통제영역의 확장은 거의 문제되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의 민주적 성장과정이 진척되어 있다.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그렇다. 이제 남은 문제는 마지막 주제인 ‘신뢰의 확장’문제이다.

 

신뢰는 대화와 협의 혹은 담론의 입장에서 해석될 수 있다. 대화와 담론의 쟁점들은 민주적 학습, 대화의 규칙, 권력불균형을 처리하는 절차 등에 관한 문제이다. 지방에서 자치가 성숙되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바로 이 ‘신뢰의 확장’에 주목해야 할 때이다. 선거에서 이긴 당선자들은 진정으로 이 점에 주목할 것이 요구된다. 지방선거에서 많은 갈등들이 분출되어 있고 저마다 참여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주요현안들을 논의하고 주요 정책들을 결정할 때 민주적 가치달성에서 마지막 남은 이 신뢰의 확장이라는 점을 주목한다면 지역의 갈등은 지역의 화합으로 승화될 것이다. 승복할 것이고, 결국 신뢰가 쌓일 것이다. 그리고 지방자치의 제2의 도약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신뢰의 확장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스스로 정책결정과정을 가치비판적 질문에 노출시키는 것을 주문하고 싶다. 이 과정은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것을 새롭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지방에 공동체의식이 자라날 것이다. 그러나 신뢰를 얻기까지 시간은 필요하다.

 

민주적 거버넌스 메카니즘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내적가치를 달성하고자 내세우는 정책수단들을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바로 그 주장들에 의해 선택된 정책들이 그 주장을 정당하게 하는 이론적 근거가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보자는 것이다.

 

시장친화적 거버넌스를 선호한다면 개인들은 평등한가? 그들이 위험을 부담할 수 있는가? 시장기제는 개인들에게 충분히 유인력을 제공하는가? 등을 가지고 평가되고 확인된 후 정책이 선택되어야 한다.

 

다원주의적 거버넌스를 선호한다면 모든 이해를 대변할 집단이 존재하는가? 집단들이 그 구성원들의 이해를 대표하는가? 집단이 균형을 이루는가? 협상된 성과가 공익에 속하는가? 등에 대한 기준들로 평가되어 정책이 선택되어야 한다.

 

숙의적 거버넌스를 선호한다면, 단순한 참여에서 그치지 말고 실질적 투입의 관점에서 참여주체들이 얼마나 동등한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참여주체들은 정책을 숙의하기 위해 동등한 능력과 사실상 동등한 의지를 보유하고 있는가? 또 실질적 산출의 관점에서 숙의적 과정에서 도출된 결론이 정책화될 기제가 존재하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답함이 없는 지방의 정책선택과정이라면 정치적 신뢰성이 얼마나 충족될지 의문스럽고 우리가 바라는 신뢰의 확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화는 지배가 아닌 의사소통이 일어나는 만남의 장소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주로 선거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책결정자와 시민들이 기본정보에 접근하는 상황에서 참여에 대한 충분한 시간과 믿음을 주는 상황에서 실현되고 신뢰가 쌓인다.

 

환원하면 선거에 승리한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민주적 거버넌스에 근거하여 정책수단을 선택하든 그 정책수단들은 스스로 비판적 주장에 노출될 때 정책의 민주적 가치 달성을 더욱 도울 수 있을 것이고 신뢰의 확장에 기여할 것이다.

 

우리의 사회발전에 매우 소중한 지방자치가 회복된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건장한 성인이 된 것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우리의 지방자치는 의식과 제도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지방자치의 발전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은 많이 남아있다. 지방자치의 질적 성숙을 방해하는 정치적 도전이 있고, 기득권의 저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지방자치의 질적 성숙을 위한 제2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지방자치의 현장인 지방에서 ‘신뢰의 확장’을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의 역할은 중요하고 그래서 감히 주문한다. 바로 지방에서 ‘신뢰의 확장’에 노력하자고. 당선 후에 선택한 정책들이 가치비판적 척도로 평가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고 임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