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6기에 바란다

 

지방자치 시행 이후 법과 제도가 지방자치에 합당하게 개선되지 못했고 오히려 반(反)자치적으로 개악되는 경향마저 드러냈다. 더 이상 지방자치가 후진성을 유지할 수는 없다. 이제 한국의 지방자치는 성년을 맞았다. 그러기에 민선 6기에 거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1. 지방분권, 재정분권 및 경쟁력 확보

선진국들의 지방자치체제 개혁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1980년대 이후 탈(脫)중앙집권, 지방분권에 박차를 가해 온 것이다. 지방분권이란 국가경영의 결정권한을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양하여 행정의 중심이 중앙정부로부터 지방정부로 옮겨온 것을 의미한다. 고도산업사회, 다원화 시대에는 중앙정부가 단독으로 각 지방의 다양한 행정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수직적 분업과 역할분담을 통하여 국가경영능력과 경쟁력을 강화하게 되었다.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해온 프랑스의 사회당정부가 1982년부터 신지방분권법 제정을 계기로 철저한 지방분권체제로 전환한 것이 대표적 예이다. 독일, 스칸디나비아제국, 미국, 캐나다 등 구미제국은 물론 일본도 「지방분권일괄법」을 제정하여 국가의 위임사무를 전면 폐지하고 지자체의 권한을 강화하는 행정개혁을 추진해 왔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를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60년대 이후 30년간 정부 주도 하에 고도 경제성장정책을 추진해오면서 경제발전과 수출증대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둔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마치 중앙정부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양 그릇된 고정관념이 생겨 행정영역은 방만하게 확장되었고, 국내외 여건변화에 대처하지 못했으며 공공부문의 경쟁력이 매우 취약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의 거센 조류가 휘몰아쳐 마침내 ’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고, ’95년에는 지방자치가 전면 시행되었지만 아직도 지방정부는 중앙의 통제와 재정지원 하에서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단계에 그치고 있다. 지방의 자치권은 크게 위축되어 있다. 조례제정권의 범위가 협소하고, 자치조직권이 침해되고 있으며, 각 부처장관에게 시·도지사의 행위에 대한 취소·정지권, 직무이행명령권을 부여하여 지자체장의 자치행정권을 침해하고 있다.

 

민선 6기에는 지방분권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자체 4개 협의체가 지방분권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어 정치권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아무리 지방분권화를 요구해도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낮고 시일만 끌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재정의 건전성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국세의 일부를 지방으로 이양하려고 해도 세원의 지역적 편중이 극심하여 지방정부 간의 재정력 격차를 더 확대할 뿐이다. 그러므로 지방교부세액을 내국세 총액의 25~30%로 대폭 인상하도록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지방교부세가 정치적으로 또는 안행부장관이 임의로 교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지방정부 간 재정력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에 따라 배분하도록 관련법 개정을 촉구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국가의 재정지원에만 의존하려 하지 말고 자주재원을 확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구역 내 기업유치, 관광객유치 등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방세수 확대에 주력해야 한다. 영국에서는 지방정부가 공단을 조성하여 공장부지를 외국기업에 무상임대 함으로써 외자유치 및 지역고용창출효과를 거두고 있다. 일본은 지자체별로 지역특산물 개발 및 판매공사를 설립하여 지역산업 진흥과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2. 주민참여의 활성화

지방자치의 이념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참여를 통한 자주성을 구현하는데 있다. 지금까지 지방정부 수장 중에는 민의를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결정권을 행사한 예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민선 6기에는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감독을 최소화하고 주민의 통제·감시를 강화하는 혁신을 이루기 바란다. 지방정부에 대한 통제·감시의 주체를 중앙정부에서 주민으로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중요한 사업을 결정함에 있어 주민이 직접 참여토록 하고 주민이 책임을 지는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었지만 지자체 통폐합 등 중요한 사항을 결정함에 있어서도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은 예가 있다. 주민에 의한, 주민자치를 정착시켜나가야 한다.

 

3. 주민을 위한 행정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생활의 질이 높아질수록 국민은 개성을 살려 보다 안락하고 격조 높은 삶을 추구하게 된다. 주민들은 공공서비스를 멀리 떨어져 있는 중앙정부가 아니라 인접한 지방정부로부터 편하게 받으려고 할 것이다. 미국의 고어(Gore) 전 부통령은 ‘99년 국제 REGO(Reinventing Government)회의 기조연설에서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정부로 재창조되려면 ①경쟁력 확보, ②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 ③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제고, ④지역과 시민사회의 강화의 네 가지를 들었다. 그것은 마치 기업이 고객을 대하듯 지방정부가 주민의 입장에서 행정을 펼치는 체제로서 그 목적은 주민만족에 있다. 기업경영에서의 고객만족은 수요창출과 이윤증대의 수단이지만 자치행정에서의 주민만족은 그 자체가 목표이다. 민선 6기에는 주민이 원하는 바를 사전에 파악하고, 주민의 취향에 맞는 차별화된 행정을 펼치며, 주민의 행정에의 접근성을 용이하게 하고, 주민이 행정서비스를 평가하는 행정체제를 구축하기 바란다. 후보시절 공약한 사업 중에서 투입되는 재원에 비하여 타당성이 낮거나 없는 것들을 무리하게 이행하려 하지 말고 경제적 타당성, 주민에의 편익성, 지방재정여건 등을 감안하여 과감히 공약을 파기해야 한다.

 

주민을 위한 제1의 행정과제는 안전과 재해예방이다. ’99년 6월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성군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이후 정부와 지방정부들은 대형화재를 막기 위해 위험건물에 대한 긴급점검에 나서는 등 재발방지조치를 강구하는 듯 했지만, 그 해 10월 동인천 유흥가의 건물에서 또 화재가 발생하여 고교생 등 55명이 숨졌다. 올해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로 대학생 등 10명이 숨졌고 120여 명이 다쳤다. 이들 사고 뒤에는 공무원과 업자간의 유착이라는 관행이 확인되었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300여명이 귀한 목숨을 잃었지만 역시 관피아가 빚은 사건이었다. 올해 5월 들어서 고양터미널화재사고, 장성 요양병원 화재까지 국민들의 가슴을 쓸어 내리는 사고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미국 지방정부의 첫 번째 업무는 주민의 안전이다. 다음으로 환경오염을 방지해야 한다, '경제개발이냐 환경보전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냐 멸망이냐'의 절박한 문제이다. 오늘날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에는 지역경제 중심으로 경쟁력을 갖춰야 하므로 지방기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을 발전시켜 지역경제를 진흥시켜나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가장 지방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며 경쟁력을 갖는다. 지방문화예술의 창달과 관광진흥에도 주력해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이다. 민선 6기에는 미래 문화예술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문화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은 이 분야의 인재양성에, 영국은 거액의 문화사업기금 조성에, 일본은 ‘국가 존립기반의 핵심적 요소’인 문화기반 확대에 각각 심혈을 쏟고 있다. 지방문화는 지구상에서 그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보물이며 수입원이다. 민선 6기에는 쾌적하고 안락한 삶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도시가 쏟아내는 폐기물과 공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떻게 도시가 ‘문화 없는 보헤미안들이 방황하는 메마른 소외의 장(場)’으로 전락하지 않게 할 것인가? 민선 6기에는 그 해답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도시정부는 적은 비용으로 인구의 도시집중 및 거대도시화에 따르는 심각한 공해, 교통난을 해결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주민을 위한 행정은 지방공무원들에 의해 실현된다. 그들은 정부의 시책을 집행하며, 주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그들이 청렴성·봉사정신·친절·창의성을 갖도록 의식개혁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공무원 교육이 주민의 행정만족도를 높이는 길이다.

 

4. 절약하는 지방정부 : 적은 비용으로 많은 서비스 공급

지방정부는 공공성에 충실하면서 기업적으로 경영하는 행정관리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났듯이 공공서비스정신이 희박하고 혁신을 거부하며 생산성과 원가개념이 희박한 관료주의를 쇄신하여 낭비적 요소를 제거하고, ‘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서비스’(with less expenses, more services)를 주민에게 공급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관료위주의 방만한 행정구조와 거대지방정부를 혁신하여 ‘작지만 효율적인 지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행정계층을 줄여 평면조직화하고, 경직화된 조직을 유연화하며, 중복기능을 통합하여 기능별 조직체계를 갖추고 인력을 감축해야 한다. 민선단체장은 그 행정조직에 군살이 어디 있는지를 잘 알 것이므로 가장 효율적으로 조직관리를 할 수 있다. 미국, 영국, 뉴질랜드 등 선진국에서는 지방행정서비스의 아웃소싱이 일반화되어 있다. 중앙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지방정부가 먼저 변해야 한다.

 

지방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하고 재정적자를 방지해야 한다. 중·장기발전계획 및 재정계획을 세워 시행해야 한다. 임기 동안 할 일은 많은데 가용재원은 제한되어 있으므로 계획적인 재정운용이 요구된다. 그것은 임기 동안 지역을 어떤 모습으로 바꿔놓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며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행정이기도 하다.

 

5. 책임지는 행정

책임정치와 책임행정은 지방자치의 본질적 요소이다. 지방자치는 자율과 책임을 기본요건으로 하며, 양자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자율과 자주적 결정에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형사고가 발생하거나 중대한 실책으로 주민의 심각한 피해 또는 지자체에 막대한 손실 또는 부채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민선 6기에는 지방정부가 ‘책임 있는 행정’(responsible administration)을 펼쳐야 한다. 주민이 직선한 지자체의 장과 의회의원이기 때문에 이들이 임기 중 공과(功過)에 대하여 정치적, 법적 책임을 지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