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 > 인천의 그 섬이 나를 오라 하네!

어느새 여름입니다. 녹음과 따가운 햇살, 간간이 긋는 빗줄기... 여름은 또 그렇게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여름은 섬이 부르는 계절이기도 하죠. 그래서 인천 앞바다에 떠있는 세 개의 섬에 다녀왔습니다. 인천국제공항을 옆에 둔 신도, 시도, 모도가 그곳입니다. 섬은 언제나 제게 호기심과 설렘 또는 두려움으로 다가왔지요.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풍치 아름답고 때묻지 않은 섬은 늘어져있는 제 몸과 마음에 활력이라는 선물을 듬뿍 안겨주곤 했습니다. 여객선으로 10분이면 닿는 신도, 시도, 모도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시의 휘황함에 젖어있는 현대인들에게 작고 외진섬은 차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글ㆍ사진 김초록 여행작가

섬과 섬을 걷는 바닷길의 만남

인천 앞바다에는 여러 섬들이 떠있지만 신도, 시도, 모도는 방조제와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 하루 만에도 다녀올 수 있습니다. 1박2일 일정이라면 신도에서 떠나는 배를 타고 장봉도까지 둘러볼 수 있지요. 이들 섬은 하나의 섬같이 느껴지지만 분위기는 제 각각입니다. 신도가 좀 더 광활하고 활달하다면 그보다 작은 시도와 모도는 고즈넉 하고 아담한 정취를자 아냅니다. 섬이 상징하는 고립감, 적요함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섬 여기저기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쉽게 오갈 수 있는 편리함이 사람들을 섬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삼목선착장에서 신도행 카페리에 몸을 싣고 배의 갑판에 오르자 저 만큼 신도가 손짓했습니다. 카페리에서 바라보는 섬은 고요했습니다. 엄연히 섬이지만 뭍같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ㆍ 배가 출항하면서부터 시종 갈매기떼와 동행하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갈매기들은 사람들에게 주저 없이 말을 건넸지요. 잘 오셨다고, 잘 즐기다 가시라고.

 

그렇게 배를 타고 10여분 만에 신도에 닿았습니다. 짧은 뱃길이지만 바다의 기운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지요. 카페리에는 수십대의 자동차가 선적돼 있었습니다. 편리함을 쫓는 사람들의 욕심이겠지요. 저는 감히 제안하고자 합니다. 자동차는 가급적 세워두고 몸만 가서 경치수려한 섬 길을 걸어보라고 말입니다. 도보가 어렵다면 마을에서 빌려주는 자전거도 있습니다.

 

신도에 우뚝 솟은 산

본격적인 섬탐방에 나섰습니다. 신도는 3개의 섬가운데 가장면적이 넓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섬길은 대체로 잘 닦여 있어 걷거나 자전거통행에 무리가 없습 니다.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섬길은 어디나 특유의 아름 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걷노라면 언뜻언뜻 바다가 보이고 밭이보이고 논이보이고 온갖 생명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졸졸 따라옵니다. 고샅길, 논두렁길, 밭둑길, 곧은길, 꼬부랑길, 바닷길, 곁길, 바윗 길, 숲속길 같은 다채로운 풍경을 만나게 됩니다.

 

신도(信島)는 이름처럼 이곳 주민들이 성실하고 믿음이 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합니다. 소금을 생산하던 곳이라서 진염(眞鹽)이라고도 부른다지요. 이곳에서 나온 소금은 품질이 우수해 조선 말기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시도에 염전 일부가 남아 있는데 시간 여유가 있다면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요.

 

신도 한복판에는 구봉산(해발178미터)이 우뚝 솟아있습니다. 높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오를 수 있습니다. 아홉 개의 봉우리가 솟아 산 이름이 구봉산(九峰山)입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벚나무와 낙엽송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짠 내음 섞인 맑은 공기는 덤이고 우짖는 산새와 짙은 녹음은 기분을 상쾌하게 해줍니다. 콧노래를 부르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입니다. 산허리쯤의 구봉정(쉼터)에 서면 가까이는 인천국제공항과 강화도가 보이고 그 옆으로 서해의 작은 섬들이 사이 좋게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옵니다. 특히 밤에 구봉정에 오르면 공항에서 펼쳐지는 빛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어 일부러 밤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구봉산은 무엇보다 둘레길이 참 좋습니다. 산을 에돌며난 이 둘레길은 섬 경치를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걷다 지치면 전망 좋은 데에 두 다리 펴고 앉아 쉬어가십시오.

 

근래 들어 각지자체에서는 둘레길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둘레길은 느림의 길이자 사색의 길입니다. 빠름의 한가운데서 정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은 자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지요. 삶이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낀다면 지금 당장 신도로 달려가 오밀조밀 이어진 산길을 느릿느릿 거닐어 볼일입니다.

 

느리게 산다는 건 자신의 모자람을 좀 더 가다듬는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요. 잠시 속도를 늦추고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만약 잘못 가고 있다면 올바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곰곰이 되짚어 볼 때가 아닌가 합니다.

 

행정 중심지인 시도

신도에서 연도교(連島橋,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건너 시도로 들어갑니다. 신도와 시도를 잇는 이 연도교는 원래 하루 두 번만 모습을 드러내던 잠수교였지만 조류흐름이 바뀌고 뻘이 쌓이자 잠수교를 헐어내고 다리를 다시 놓았습니다. 시도(일명살섬)는 신도보다 작지만 면(面) 중심지여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듭니다. 우체국, 면사무소, 종합운동장 등 행정편의시설이 다 모여있지요. 고려 말 최영장군과 이성계장군이 이끌던 군대가 강화도 마니산에서 이 섬을 과녁 삼아 활쏘기 연습을 했다 해서 ‘화살섬’이라고도 불립니다.

 

연도교를 건너면 우측으로 바닷물이 들고 나는 개펄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 모습이 꽤나 역동적입니다. 개펄의 순기능은 여기에 밝히지 않아도 잘 아실 겁니다. 생명들의 둥지이고 살아가는 터전이지요. 신도와 시도 사이의 바다는 예부터 대나무발(살막이)을 설치해 물고기를 잡던 곳입니다. 지금도 낚싯줄을 던지면 망둥이, 우럭 같은 어종이 심심찮게 올라와 낚시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요.

 

해당화 길게 늘어선 바닷가둑길을 따라 가면 갈대 무성한 생태공원과 염전이 나옵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저염도의 천일염입니다. 현대식 주택들이 즐비한 꼬불꼬불한 섬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앞으로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납니다. 수기해수욕장입니다. 저 뭍의 큰 해수욕장에 견주면 보잘것없지만 고운 모래와 소나무 숲이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수기해변저 멀리로 보이는 강화도가 그림 같습니다. 해변 한 쪽에 한 폭의 그림처럼 들어선 건물은 드라마 <풀하우스> 세트장 입니다. 드라마가 끝난지는 오래 됐지만 세트장은 아직 그대로 있습니다. 전망이 확 트인 통유리창과 바다로 뻗은 나무데크가 꽤나 이국적입니다. 세트장 앞에 펼쳐진, 활 처럼 휘어진 해변도 무척 아름답고 드라마에서 주인공 이영재(비)와 한지은(송혜교)이 살던 집거실 앞과 해변으로 나있는 나무테라스도 운치 있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섬

시도에서 모도로 건너갑니다. 행정구역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모도리입니다. 시도와 모도를연결하는 400여 미터의 다리(연륙교)는 섬사람들의 삶을 180도로 확 바꿔 놓았습니다.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하루 두 번 물이 빠진 틈을 타서 건너야 했지요. 다리를 건너면 우측으로 ‘노르메기’라는 해안이 있습니다. 입질을 기다리는 서너 명의 낚시꾼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습니다. 모도는 7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으로 주민들의 생계인 고기가 잡히지 않고 띠만 잡힌다 하여 띠모(茅)자를 따서 모도란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지명의 유래가 재밌지만 그 옛날 섬사람들의 애환을 짐작해 볼 수 있지요.

 

모도에는 암행어사불망비(不忘碑)가 서있습니다. 130여 년 전 강화출신 암행어사 이건창이 과중한 세금과 부역에 시달리던 모도 주민에게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주자 주민들이 이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불망비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해변의 모양이 배 밑 구멍처럼 생겼다는 배미꾸미해변이 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시간’을 촬영했던 곳으로 탁 트인 해변 한 쪽에는 조각공원이 꾸며져 있습니다. 조각가 이일호씨가 사랑과 성을 주제로 에로틱한 조각 작품 50여 점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조각공원 앞으로는 자그마한 해변과 기암들이 병풍처럼 늘어서있고, 바다 건너로는 장봉도가 그림처럼 떠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여름날의 섬 정취에 취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가 되겠지요.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이 읊은 것처럼 섬은 누구나 한번 쯤 가보고 싶은 이상향이지요.

	김초록 작가 - 강릉 출생 -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 KT&G 상상문학상 수필 부문 당선 - 저서 <여름 이야기> <7가지 테마가 있는 여행> 등 - 월간 <비타민>, 월간 <품질과 창의> 등에 여행칼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