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빌바오는 면적 41.3㎢, 인구 약 35만 명의 도시로 바스크 지역의 중심도시이다. 인구 규모로는 빌바오 주변지역을 포함하여 약 100만 명으로 스페인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다. 빌바오는 영국, 프랑스와의 교역 항구였고, 산업혁명기를 거치면서 철강 및 제철, 조선산업의 발달로 20세기 초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했던 항구공업도시였다. 그러나 철강자원의 고갈로 1970년대 이후 중공업 위축으로 산업이 침체되고 실업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지역경제가 악화되었다. 더구나 그간의 산업활동으로 네르비온 강과 주변 환경이 오염되었으며 공장이 있던 지역은 버려진 땅이 되었다.
1989년 바스크정부는 빌바오 대도시권의 재생을 위한 종합전략을 구상하고 단계적 계획을 추진한다. 1992년 스페인 중앙정부와 바스크 지방정부가 공동 투자해 설립한 개발 공사인 ‘빌바오 리아 2000’과 도시 재건축의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민간협력 파트너십 ‘빌바오 메트로폴리 2030’에 의해 20년간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으며,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네르비온 강을 중심으로 문화, 경제활동이 전개될 수 있도록 산업이 쇠퇴한 자리에 문화시설을 설치하였고, 제철소가 있던 지역에 녹지 등 친환경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네르비온 강의 수질개선 등 환경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였고, 이는 문화도시 건설의 기반이 되었다. 도시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경제력과 경쟁력의 밑바탕이 된다는 점을 착안하여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한다.
1997년 10월 개관한 구겐하임미술관은 미국인 건축가 프랑크 게리의 설계로 7년 만에 완공되었는데, 건물은 네르비온 강에 정박한 선박 형상이라고 한다. 비행기 외장재인 티타늄 3만 3천장이 미술관 외부를 덮고 있으며, 날씨에 따라 다른 색깔을 띠어 20세기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극찬을 얻기도 하였다.
구겐하임 건설에 총 135백만 유로가 투자되었고 건물공사에만 84백만 유로가 사용되었다. 바스크 주정부의 투자금은 36백만 유로였으며, 120백만 유로를 미국으로부터 빌려왔다. 미술관은 5년 만에 모든 투자금을 회수하였고, 지역 호텔수가 10배 증가하였다. 이로 인한 새로운 일자리 등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거두어 예전의 침체된 산업도시에서 문화와 환경도시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또한 미술관 외에도 공공디자인을 고려한 다양한 시설들을 계획했다. 1995년 영국의 공공디자이너 노먼포스터가 디자인한 빌바오 지하철, 스페인 출신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의 빌바오 공항, 세자르 펠리에 의한 수변 공간 개발 등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지하철은 구도심과 도심 외곽을 연결하고, 구도심 재생사업 일환으로 잔디밭 위를 구르는 친환경적 전차를 새롭게 도입하는 등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계획도 함께 추진하였다. 주요 문화공간을 연결하는 보행자길, 수변공간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도로, 보행자전용 다리도 건설하여 ‘접근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영국 북동부의 산업도시 게이츠헤드市는 2002년 7월 밀가루 공장(Baltic Flour Mills)을 리모델링하여 ‘발틱현대미술센터(Baltic Center for Contemporary Art)’를 조성하였다. ‘발틱(Baltic)'이란 명칭은 이곳이 이전에 밀가루 공장이었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공장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으로서 장소성과 역사성을 보존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맥주공장 이었던 독일 베를린의 복합문화예술공간 ‘Kulturbrauerei’ (문화양조장), 빵공장이었던 영국 버밍햄의 ‘Custard Factory’ 등 옛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는 명칭을 사용한 서구의 문화공간 성공 사례는 많다.
침체된 산업도시를 문화관광 도시로 전환시킨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는 맥락에서 빌바오와 게이츠헤드 사례는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빌바오의 경우 구겐하임미술관의 설립만으로 도시재생프로젝트를 대변할 수 없듯이 게이츠헤드도 마찬가지로 옛 밀가루공장이라는 유휴시설에 대한 단순 목적 전환 차원의 현대미술관으로서의 재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발틱현대미술센터, 밀레니엄브리지, 세이지음악당 등 게이트헤드 도시재생프로젝트는 이에 힘을 실어준 사전 작업들이 존재했다. 게이츠헤드는 1990년대 초부터 어두운 폐탄광촌의 이미지를 벗기 위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도시 곳곳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하여 예술적 환경을 조성하면서 서서히 도시의 삶에 미치는 예술의 영향력을 넓혀갔다. 안소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초대형 조각 작품 <북방의 천사 Angel of the North>(1998)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당시 이 조형물 설치에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와 예술가, 시민간의 끊임없는 협의에 의해 설치가 되었는데 현재는 게이츠헤드의 명물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런던의 현대미술관 '테이트모던'(Tate Modern)은 밀레니엄브리지(보행자전용 다리)를 통해 템즈 강 건너편 지역에서의 접근이 용이하도록 하였으며, 발틱현대미술센터 역시 뉴캐슬(New castle)지역과 게이츠헤드(Gateshead)를 나누는 타인 강을 역시 보행자 전용다리를 통해 누구든지 편안하게 도보로 강을 건너 접근이 가능하도록 설계를 하였다. 즉,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장소의 접근성’을 중요시한 것이다. 또한 ‘무료입장’(Free Entry)을 건물 외관에 커다란 글자로 명시하여 누구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개방성’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다른 현대미술관과 달리 발틱현대미술센터는 처음부터 소장품(collection) 없이 새로운 예술(New production)을 창조하는 ‘예술공장’(Art Factory)을 지향하였다. 대중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음악,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하는 예술의 형태를 소개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2002년 개관 이후 100여 건이 넘는 새로운 예술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전시 되어 왔으며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로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Domain Fields’(2003)를 꼽고 있다. 2살부터 85살까지의 게이츠헤드와 뉴캐슬 지역 주민 가운데 285명의 지원자를 모집하여 이루어진 이 작업은 참가한 모든 사람들을 석고 주형으로 뜨는 작업 'Live cast'를 통해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이 시대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가능하도록 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을 예술의 현장으로 끌어들여 예술도시의 주인’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고자 노력한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시사점 1. 장기적 도시 재생 복합프로젝트
두 도시의 사례를 통해 본 ‘도시 재생’은 도시의 랜드마크를 위해 미술관 같은 새로운 문화 인프라를 탄생시킨다는 단순 개념이 아니라, 문화를
주도로 하여 교통, 환경 등 도시 전체의 제반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고려한 ‘도시 활성화’ 겨냥 복합 프로젝트의 장기적 실천의 결과이다. 2. 접근성과 개방성 최우선 고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게이츠헤드 발틱현대미술센터,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 파리 오르세미술관 등 공통적으로 강변에 위치해 있으며 이들 공간과 이어주는 보행자 전용다리를 설계하였다. 이는 어디서든지 누구나 접근이 쉽도록 접근성과 개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으로서,사람
의 일상으로 연결되는 ‘열려 있는 공간’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3. 주민에 대한 지속가능한 문화서비스 전략
발틱현대예술센터를 포함한 게이츠헤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았던 피터 스타크(Peter Stark)는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을 외부 관광객이 아니라 철저히 ‘주민을 위한 문화서비스’를 창출하고자 했던 점을 꼽았다.
공간 자체가 아닌 공간을 이용하는 지역 주민 중심의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전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술로 승화한 공공시설의 주인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도시의 ‘시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