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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레터]코로나1년, 현재 중국은 - 베이징 특파원의 '코로나 차이나' 답사기

작성자웹진관리자 작성일2020-12-07
이슈공간

코로나1년, 현재 중국은

- 베이징 특파원의 '코로나 차이나' 답사기 -

기자는 올해 봄 시도지사협의회 ‘분권레터’ 기고를 통해 지난해 말 TV의 짤막한 중국발 외신으로 시작한 코로나19 사태가 어떻게 전 세계를 집어 삼켰는지, 그리고 베이징 특파원으로 발령 받은 기자는 이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소개했다. 중국에서 감염병 사태가 종식돼 빠른 시일 안에 중국으로 출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했다.
류지영 / 서울신문 베이징 특파원
글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말. 서울의 중국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중국 내 사정이 나아져 베이징으로 들어가도 된다는 것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이때부터는 중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명절 때 귀성객이 코레일 홈페이지에서 KTX 티켓을 구하려고 수시로 검색을 해야 하는 상황과 같다고나 할까. 아무리 찾아도 표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 여행업체들이 거의 모든 한중 노선 항공권을 입도선매하고 있었다. 애초 중국이 바이러스 사태에도 항공노선을 열어놓은 것 자체가 외국에 있는 중국인들이 귀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지 기자 같은 외국인이 중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렇게 표 구하기를 포기하고 내가 중국 특파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던 9월 초. 마침내 한 여행사에서 연락이 왔다. 24일 저녁 10시 인천~청두 티켓 한 장이 나왔다는 것이다. 중국인 여행객 한 명이 취소한 표를 가까스로 낚아챘다. ‘천우신조’라고나 할까. 지난해 9월 회사의 배려로 특파원 준비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의 출국이었다. 회사 사람들이 “역대 특파원 파견 역사상 최장기간 대기 기록을 세웠다”고 놀렸다. 아무튼 중국으로 갈 수 있게 돼 다행이었다. 남은 기간은 3주. 부랴부랴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출국 준비에 들어갔다. 고민 끝에 가족은 일단 한국에 남기로 했다. 다 같이 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고, 이번 겨울에 중국에서 재차 코로나19가 유행할 것으로 보이기도 해서다. 만에 하나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한국에서 걸리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9월 24일 저녁 인천공항에 왔다. 늘 사람들로 붐비던 공항에 사람이 없었다. 마치 좀비 영화 속 사람들이 사라진 장면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살짝 무서웠다. 앞으로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한국으로 돌아오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가족과 작별을 고하고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일부 중국인들이 의사나 간호사들이나 입는 우주복 형태의 방역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중국에 코로나 환자가 얼마나 많길래 저러나’ 이들을 보니 중국으로 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이 방역복을 입은 건 중국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우리나라를 못 믿어서였다. 전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과 중국의 코로나 방역 상황이 봄과는 달라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 군대에 다시 간 것 같은 청두 격리생활 >
25일 새벽. 인천에서 4시간을 날아 쓰촨성 청두에 도착했다. 베이징과 2000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곳이자 판다의 최대 서식지다. 중국 당국이 볼 때 베이징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다. 절대로 바이러스가 침투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 때문에 한국인이 베이징으로 가려면 중국 외교부가 지정한 12개 도시 가운데 한 곳에서 2주간 격리를 마쳐야 했다. 그래서 간 곳이 청두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했다. 간호사가 검체 채취를 위해 콧구멍 깊숙이 바늘 같은 봉을 밀어 넣고는 1분 넘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하드코어’ 검사에 잠깐이지만 무척 고통스러웠다. 중국 정부가 지정한 도심 격리 호텔로 들어왔다. 호텔 측에서 2주간 격리 비용을 선불로 내라고 했다. 한국에서 가져간 신용카드 3장이 모두 결제가 되지 않았다. 비상금 1만위안(약 170만원) 가운데 7000위안(120만원)을 건넸다. 중국에서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앞으로 나는 중국에서 어떻게 물건을 사고 밥을 먹고 택시를 탈 수 있을까. 복대에 현금다발을 넣어 다녀야 하나’ 방 배정을 받아 들어오니 새벽 5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본격적인 14일 격리가 시작됐다.
격리 도시락
호텔 내 수백명의 격리 승객이 너도나도 인터넷으로 시간을 보내는 탓에 트래픽이 몰려 한국 사이트에 접속이 되지 않았다. 좁은 호텔 방에서 하루 종일 간단한 운동을 하며 지냈다. 군대에 다시 온 기분이 들었다. 가족이 너무 보고 싶었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아내와 딸과 같이 있는 것이 제일 낫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격리가 해제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 10월 9일 새벽. 이날의 기분은 20여년 전 병역을 마치고 자대(自隊)에서 나올 때와 똑같았다. 구속에서 해방됐다는 기쁨과 앞으로 3년간 타국에서 일해야 한다는 불안이 교차했다. 마침내 청두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 코로나19 공포 완전히 벗어난 중국 >
이후 두 달 가량 내 눈으로 직접 본 중국은 머릿 속 생각과는 딴판이었다. 우선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청두는 인구 1500만명이 넘는 거대도시다. 하지만 격리기간 중 객실 창밖으로 본 주민들은 대다수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기자가 중국에 입국해 취재차 다녀 온 장쑤성 옌청, 저장성 항저우, 허난성 카이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방역이 엄격한 베이징에서 많은 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이는 비말 차단 기능이 떨어지는 덴탈용 면마스크다. 우리나라처럼 고성능 필터가 들어간 마스크는 한국 교민 외에는 쓰지 않았다. 본토에서 공식 감염자가 거의 나오지 않자 주민들이 정부의 방역 대응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위챗 헬스코드
중국이 코로나 대처에 자신감을 갖게 된 데는 정보통신기술(ICT)이 결정적이었다.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웨이신(위챗)이나 즈푸바오(알리페이) 앱에서 ‘젠캉바오’(헬스키트)를 내려받아 자신의 신상 명세를 기입하면 코로나19 감염자 접촉 여부를 자동으로 알 수 있다. 공공장소에 갈 때는 이 앱을 열어 ‘내가 정상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면 된다. 중국 정부가 중국 내 모든 사람의 스마트폰을 통해 동선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사생활과 공공보건을 맞바꿨다고 보면 된다. 다른 나라 같으면 ‘방역을 핑계로 빅브라더가 나타났다’고 논란이 됐을 수 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현금 없는 사회’된 중국 >
중국은 이미 우리보다 한 발 앞서 현금 없는 사회가 돼 있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이를 더욱 앞당겼다.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개통한 뒤 이 번호를 갖고 현지 은행에 찾아가면 금융 계좌를 만들 수 있다. 그 뒤에 즈푸바오나 웨이신즈푸(위챗페이)에 자신의 금융 계좌를 연동하면 된다. 이때부터는 스마트폰으로 거의 모든 결제를 대신할 수 있다. 지갑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돼 무척 편리했다. 청두 격리기간 동안 ‘앞으로 신용카드 없이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까’ 고민한 건 그야말로 ‘기우’였다.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는 사업자와 소비자가 손으로 돈이나 카드를 주고 받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하다. 노점상 등이 음식을 만들며 현금을 손으로 만질 필요가 없다. ‘비접촉 결제’는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이제 중국의 도시에서 현금을 쓰는 이들은 아직 모바일 페이를 개통하지 않았거나 사기나 신용 불량 등으로 거래가 차단된 이들 뿐이다. 중국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카드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 트럼프 ‘중국 때리기’에도 미국 사랑은 여전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끊임없는 ‘중국 때리기’에도 중국인들의 미국 사랑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곳 스타벅스의 라테 커피 톨사이즈(355㎖) 가격은 29위안(약 5000원)이다. 한국(4600원)보다도 살짝 비싸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약 1150만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우리 기준으로는 체감 가격이 1만 5000원쯤 한다고 보면 된다. 상당한 고가지만 스타벅스 매장에는 저렴한 자국 브랜드 커피를 놔두고 ‘미국의 맛’을 원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모델3도 가장 저렴한 모델이 25만위안(4250만원)이나 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시내 주요 서점에서도 미국인 작가의 콘텐츠들이 판매량 상위권을 달리고 있었다.
중국인들이 혐오하는 건 꼭 집어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기자가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어떻게 저렇게 우리에게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느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힘을 모아 방역에 나서야 할 상황임에도 일국의 지도자로 보기 힘든 저속한 발언을 쏟아내는 그에게 “미친 놈 아니냐”는 반응도 많았다. 실제로 상당수 중국인들은 조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을 기뻐했다. 두 나라가 예전만큼 가까워지지는 못해도 서로 예의를 갖춰 품격 있게 ‘이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서다. 일각에서는 ‘중국 공장들이 인도나 베트남으로 옮겨갈 것’으로 내다보지만, 이들 국가가 중국의 대체 생산기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중국도 이를 잘 알기에 ‘중국 때리기’가 미국에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어한다. ‘바이러스 대응’을 명분 삼아 두 나라가 다시 손잡을 수 있게 되길 바라는 기색도 역력했다.
< 방역 자신감 회복하자 ‘코로나 우한 유입설’ 군불 피워 >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자 뜻밖에도 “코로나19 발원지는 후베이성 우한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곳은 감염병이 발견된 장소일 뿐, 바이러스가 처음 생겨난 지역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서구 세계가 제기하는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피하고 중국의 과오를 물타기하려는 의도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들여온 냉동식품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자 이를 ‘외부 유입설’의 새로운 근거로 내세우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세계인의 지지를 받지 못함에도 이런 주장을 이어가는 건 내부 결속 목적이 크다. BTS나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 김치 원조 논쟁 등 일반적인 상식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전파 대상을 중국 내부로 한정하고 있어서다. 아직 중국은 경제 규모에 걸맞는 정치 의식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미성숙을 극복해야 세계인이 중국을 ‘진정한 리더국가’로 인정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 최고지도부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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