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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레터]‘팬데믹 세대’, 한국형 ‘청년보장’이 필요하다!

작성자웹진관리자 소속기관교육홍보부 작성일2021-03-05
이슈공간

‘팬데믹 세대’,
한국형 ‘청년보장’이 필요하다!

어느 시대나 경제위기는 모든 이에게 고통을 안기지만, 특히 교육단계를 벗어나 시장으로 이행을 맞닥뜨린 세대에게 더 큰 고통을 안긴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에겐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있었고, 유럽과 미국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닥친 위기는 그 범위가 전 지구적이고 전 산업적이어서 과거의 경험으로는 감히 그 파장의 크기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이럴 때 무엇보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별 청년들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은 너무도 다양해서 중앙정부의 정책과 프로그램만으로는 모두 포괄하기 어렵다. 중앙정부는 제도를 정비하고 재정을 풀 수 있지만, 우리 동네 청년들이 떠안은 어려움을 일일이 살필 수는 없다. 중앙정부의 지원 프로그램과 재정을 동네 청년들에게 꼼꼼히 연결해주고, 청년들이 겪는 각각의 어려움을 살펴 빈 구석을 메우는 역할은 지방정부의 몫이다. 1997년 위기 때 우리나라 민선 지방정부는 겨우 3살이었다. 당시 청년들은 홀로 혼란의 한가운데 서서 고통을 견뎌내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27년의 역사를 쌓은 지방정부들이 동네 청년들에게 우산이 되고 길잡이가 되고 밥이 되어주어야 할 때다.
서복경 / 더가능연구소 대표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일상적으로 경기 호황·불황주기가 나타나면서 산업구조 변동이 일어난다. 사양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성장산업에서는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며 교육기관에서는 변화되는 산업구조에 맞춰 프로그램을 변경해간다. 그런데 ‘경제위기’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사회 안의 개인·기관들이 적응과 대비할 시간이 없이 짧은 기간 안에 기존 산업구조를 급격하게 변동시키기 때문에 위기 국면 이후에 오랫동안 좋지 않은 결과를 남긴다.
위기 이전 산업구조에 진입할 수 있도록 맞춰져 있던 정규교육과정 및 직업훈련기관 프로그램들이 위기 이후 변화된 산업구조에 맞게 조정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재조정기간 동안 이행기를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은 기존에 받은 교육과 변화된 시장이 요구하는 일자리·기술 사이에 불일치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당장의 일자리 충격으로 인한 미취업기간 지연에 더하여, 변동된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다시 교육훈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까지 겹치는 구조적 이행 지연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위기 한가운데 놓인 청년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기존에 준비해 온 일자리는 채용공고조차 나지 않는데 미래의 일자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위기 직전 간신히 진입한 일자리에서는 ‘신참’부터 쫓겨난다. 기업, 자영업자, 선배 노동자 모두 허둥지둥 충격을 감내하고 있는 시간, 누구도 이행기 청년들에게 현재 산업구조 변동의 성격은 무엇이고 당장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정보를 연결하고 새로운 준비를 안내할 길잡이가 절실한 시간이다.
<그림 1> 경제위기 전후 산업구조 변화와 청년의 삶
이행기가 길어지면서 청년들은 생활고를 견뎌내야 한다. 더하여 시장이 원하는 새로운 기술수요를 충족하거나 기존에 사라져버린 일자리 대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한 이행비용도 증가한다. 그러나 단기 아르바이트 등 생활비와 이행비용을 감당할 방법조차 가로막혀 있다. 아르바이트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살던 동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청년들에겐 또 다른 난제가 기다린다. 바로 주거비다. 당장의 생활비, 주거비를 해결해나가면서 새로운 교육훈련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
정부와 사회는 이행기 청년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생계와 교육을 지원해서 ‘이력현상’과 ‘상흔효과’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이력현상(Hysteresis Effect)’이란, 청년기에 높은 실업률을 경험한 세대가 이후 연령대에서도 다른 세대에 비해 더 높은 실업률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상흔효과(Scarring Effect)’란 청년기에 조기 실업과 빈곤을 경험한 사람들이 장년이 되어 생활을 유지하거나 노년에 소득보장 등에도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효과를 말한다. 여러 경험 연구들은 이미 ‘IMF 경제 위기’ 때 청년기를 힘겹게 넘기고도 이후 오랫동안 후과를 겪고 있는 ‘IMF 세대’가 존재함을 확인한 바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코로나19 팬데믹 세대’가 ‘IMF 세대’처럼 길고 깊은 후과를 겪지 않도록 위기대응계획을 세우고 실천해나가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에서도 산업구조 변동과 기존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불일치 속에서 청년실업이 급증했다. 유럽연합 각 국가들은 개별국가 차원의 전통적 대응으로는 청년들이 겪는 삶과 이행의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2013년 유럽연합 ‘청년보장제(Youth Guarantee)’를 채택했다. 진로이행의 어려움에 직면한 청년들에게 맞춤형 상담으로 일자리와 교육·훈련프로그램 정보를 제공하고 연결하며, 이행기 동안 생계와 주거를 지원하는 통합 프로그램이다.
2013년 유럽연합의 결정은 각국 공공고용서비스(Public Employment Service, PES)의 혁신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실업이나 생계의 어려움으로 ‘스스로 찾아오는’ 청년들에게 실업급여, 고용·훈련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위기 청년을 ‘찾아가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동네 청년들이 지금 이 순간 겪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어려움을 발견하고 정부 정책 프로그램으로 연결하는 일은 중앙정부들이 가진 포괄적 공공고용서비스 체계만으로는 부족했다.
각 국가들은 주거지 가까운 곳에 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센터를 더 많이 만들고, 위기 청년들이 언제든지 들러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핀란드는 유럽연합의 결정에 발맞추어 2013년 핀란드 ‘청년보장’을 채택했고, 위기 청년에 대한 원스톱 안내센터 모델을 구축하기로 했다. 중앙정부는 유럽사회기금(European Social Fund)의 재정지원을 받아 이전 몇몇 지방정부들이 시도했던 청년센터 모델을 전국단위로 확장하기로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청년센터가 오흐야모(Ohjaamo)다. 오흐야모는 중앙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설립부터 운영까지 지방정부가 책임을 진다. 프랑스도 이미 1980년대부터 중앙정부가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지방마다의 특성을 살려 청년들에게 정보와 상담, 정책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센터인 ‘미시옹로칼(Mission Locale)’을 전국 곳곳에 가지고 있었고, 이 기관이 프랑스의 청년보장정책을 집행하는 거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여러 지방정부들이 청년과 정부, 청년과 정책을 연결하는 센터들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는데, 아직 그 수가 절대 부족하며 중앙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청년들이 겪고 있는 위기는 총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이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더라도 이를 곧바로, 필요한 청년에게 전달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별도로 필요하다.
유럽연합은 표준화된 청년보장제 규범을 만든 후 각국에 집행의무를 부과하고 매년 점검해나가던 와중에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했다. 2020년 10월에는 코로나19 발발 이후 더욱 심각해진 유럽 청년들의 일자리와 이행 지원을 위해 ‘강화된 청년보장제(The Reinforced Youth Guarantee)’를 채택했다. 유럽 각국 정부는 29살 이하 모든 유럽 청년들이 실직하거나 교육단계를 벗어난 직후 4개월 이내에 양질의 일자리를 얻거나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사실 정책 프로그램이나 제도만으로는 유럽연합 모델이 우리나라에 그렇게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나라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도 대개 진행하고 있는 정책이나 프로그램들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청년보장제’와 유사한 제도도 있다. 2020년 1월 제정된 ‘청년기본법’이나 17개 광역지방정부와 226개 기초지방정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청년기본조례’가 있다. 지금도 전국의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는 청년들에게 상담과 지원, 연결서비스를 한다. 2021년 1월 시행된 국민취업지원제도에 따라 요건을 충족한 청년들은 수당과 함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다. 각 지방정부들은 학자금 이자 지원, 주거비 지원, 면접비 지원 등 재정 능력 한계 내에서 여러 지원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보편적 사회안전망의 범위가 다르고 청년정책을 대하는 정부의 ‘책임’의 범위가 다르다. 유럽연합의 많은 국가들은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기 이전에 이미 실업부조제도가 도입되었고, 공공주거 인프라가 폭넓게 깔려 있었으며,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은 물론이고 대학 등록금도 본인 부담이 아예 없거나 한국과 비교해서 턱없이 싸다. 우리는 실업부조제도도 2021년에서야 처음 도입되었고, 취업상태에 있지 않은 청년들 중 극히 일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도 올해 처음 시행한다. 대학 등록금은 유럽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비싼데 대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정부 지원은 대부분 대출이다.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유럽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청년들은 ‘청년행복주택’ 등의 몇몇 프로그램만 참여할 수 있을 뿐이다. 공공임대가 아닌 정부의 주거지원정책은 대개 다 대출 프로그램이다. 학자금도 대출, 전월세 보증금도 대출, 생활비지원도 대출로 구성된 현재의 정책들은 청년 채무자를 양산하고 있고 일부는 청년신용불량자로 만들고 있다.
청년기본법상 청년은 1천만명에 이르는데 전국에 고용센터는 출장소까지 합쳐 171개밖에 없다. 최근 지방정부들이 청년정책을 전달하는 센터들을 속속 개소하고 있지만,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일자리정보나 교육훈련정보망을 활용할 수 없고 센터 상담 인력들에게 체계적인 정책정보 교육이 제공되지는 않기 때문에 위기 청년이 찾아오더라도 맞춤형 정책서비스를 제공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작년과 올해 중앙정부는 나름 재정을 투입하고 제도를 정비하며 노력하지만, 당장 이행의 위기와 생계의 곤란에 부딪힌 청년들 중 일부만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청년의 일자리와 생계, 주거와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 능력이 되는 만큼’만 지원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2021년 1월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지원자가 20만명이 몰렸는데 그중 12만명이 청년들이었다. 올해 정부는 총 23만명의 청년들에게 수당과 취업지원서비스를 할 수 있게 예산을 편성해 놓았는데, 1월에만 12만명이 몰려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에 부응해 소상공인들이 입은 영업 손실은 ‘지원받는 게 아니라 보상받아야 한다’는 주장처럼, 지금 청년의 어려움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개별 청년이 나태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생계 곤란을 겪는 게 아니다. 전 지구적 재난상황이 빚어내고 있는 구조적 이행 지연이다. 국가는 지금 청년의 삶을 능력되는 만큼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능력을 만들어서라도 ‘책임’져야 한다. 유례없는 확장재정이라고 하지만 OECD 모든 국가들이 전례 없는 규모의 빚을 내가면서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재정 잔고를 보면서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개인 청년에게 빚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국가가 빚을 내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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